로잔과 세계 복음주의: 신학적 특징과 선교적 영향

이 글은 Regnum Books의 ‘로잔운동: 다양한 관점들 (Oxford: Regnum Books, 2014)’ 중 한 부분(장)으로, 당 출판프로그램의 허가 하에 이곳에 개재되었습니다. 이는 저자의 개인적 역량에 따른 견해이며 반드시 로잔운동의 관점을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Regnum의 다른 책들 보기.

일반적으로 로잔운동으로 알려져 있는 로잔 세계복음화 위원회는1974년 세계 복음화 국제대회의 일부로 시작된 세계적 복음화 운동입니다. 이 대회에는 전 세계 150개국 이상에 흩어져 있는 약 2,700명의 로잔 대표들이 참석했습니다. 빌리 그레이함과 존 스토트에 의해 조직된 로잔 운동은, 1974 로잔대회를 비롯하여 마닐라(1989), 케이프타운, 남미(2010)에서의 대회들을 포함한 여러 가지 전략적 국제상담들을 관할했습니다. 이 장의 목적은 주요 로잔운동의 주요 신학적 특징들 및 선교적 영향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 장은 주요 신학적 특징들에 대한 토의로 시작되어 운동 전체로서 미치는 더 큰 선교적 영향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집니다.

로잔 언약의 신학적 특징

로잔운동의 가장 지속적인 신학적 유산 중 하나는 문서로, 로잔언약마닐라 선언, 케이프타운 서약은 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특징들을 제시해 줍니다. [109]로잔언약은 복음적 운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신학적 문서들 중 하나로 널리 여겨지고 있습니다. 1974년 로잔대회 마지막에 있었던 감격적인 의식에서 빌리 그레이함과 세계 교회의 주요 지도자들은 이 문서에 사인을 했고 이는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이 문서는 전 세계에 수많은 교회들과 기독교 운동, 신학교, 선교단체의 대표적인 신앙 선언문이 되었습니다.

로잔언약은 중요한 신학적 특징들을 제시해 주는 15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중심적 증언을 지금부터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 (조항 1)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제목의 첫 번째 조항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곧 선교적 하나님으로 우리가 기쁨으로 그의 구원적 사명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부르셨다고 확언합니다. 선교는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과 그의 구원적 목적, 이 세상에서의 계획에 관한 것이지 교회가 행하는 활동이나 업무, 전략, 계획 등과는 거리가 멀다고 분명히 이야기합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선교는 하나님과 그가 어떤 분인가에 관한 것이지 우리, 우리가 하는 일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요컨대, 선교는 기본적으로 성장과 전 세계로 뻗어나가 영향력을 끼치는 데에 목적을 두는 교회 교리의 부분집합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가 있기 이전부터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행하신 구원적 행동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문서는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위해 세상으로부터 그의 백성을 부르셨고, 그의 나라의 확장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과 그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 다시 그들을 세상에 보내어 그의 종과 증인이 되게 하신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가 순종, 선포, 섬김이라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그의 지상에서의 사명에 온전히 동참하도록 부르셨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사명이라는 큰 그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승리주의에 빠지지 않고 우리는 하나님 중심의 증언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의 권위와 능력 (조항2)

두 번째 조항은 로잔운동의 또 다른 주요한 신학적 특징을 강조하는데, 즉 그것은 세계 복음화에 있어 성경의 중심적인 역할입니다. 로잔운동은 구약과 신약이 모두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과 사실성, 권위를 확증하고 “그 증언에는 오류가 없고 믿음과 행함에 있어 결코 실수가 없는 유일한 규율”임을 단언합니다.[110] 이 확증의 묘미는 교회가 성경을 이해하는 방식에 때때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두 가지 잠재적인 문제들을 방지해 준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로잔운동은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의 위대한 흐름 안에 견고히 서서 하나님 말씀의 능력과 효력을 확증합니다. 많은 교회 교파들이 쇠퇴하게 된 주요 원인이 말씀의 권위 위에 확고히 서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말씀의 능력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대로의 말씀이 오류가 없고 명제적으로 진리라는 사실을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그리고 세월에 걸쳐 존속해온 교회와의 연속선상에서 말씀을 읽고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므로 언제나 이 세상과 교회, 즉 그의 몸의 주인이신 그분의 신적 권위로부터 흘러나옵니다.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보편성 (조항 3)

로잔운동의 세 번째 주요 신학적 특징은 ‘죄인들을 위한 유일한 대속물’이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성입니다. 로잔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홀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확증합니다.[111]로잔언약 은 하나님이 모든 종교를 통해 동일하게 말씀하신다는 관념이나 다른 종교들도 예수의 이름 없이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관념을 거부합니다. 오히려, 교회는 전인류에 그리스도의 능력을 선포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시인하게 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로잔운동은 전통적 보편주의와 다양한 그리스도 중심 형식의 보편주의 (포용주의와 같은)를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차별성뿐 아니라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입으로 분명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해야 함을 주장합니다.

전도의 본질/ 교회와 전도 (조항4 와 6)

로잔운동은 근본적으로 세계 복음화에 헌신된 기독교인들의 네트워크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 세계의 사람들이 복음에 반응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으나, 전 세계의 모든 민족이 복음을 듣고, 교회의 증인을 통해 삶을 살아낸 복음의 살아있는 증인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신성한 임무입니다. 네 번째 조항이 전도에 초점을 맞춘다면, 여섯 번째 조항은 세계 복음화의 과제는 교회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실제로, 그 문서는 “교회는 하나님의 전우주적 목적과 그가 지명하신 복음을 전파하는 방법의 가장 중심에 있다.”라고 선언합니다. 때때로 교회는 이 세상에서 오로지 도구적인 목적(예를 들어, 복음을 선포하는 일)만을 갖는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로잔운동은 교회가 보다 깊은 존재론적 목적을 가지며 하늘 왕국을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데에 필수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예상합니다.[112] 다시 말하면, 교회는 단지 하나님이 복음을 선포하시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세상에 세우고 계신 것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가 하늘왕국과 동일시 될 수는 없지만, 하늘 왕국은 죄에 묶인 삶으로부터 부름받아 나와 교회에서 구원받은 무리와 기쁨으로 함께하는 하나님의 백성과 따로 분리되어 완성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능력을 선포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자체에 ‘십자가의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단지 단어들로 구성된 독립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전 세계에 현존하는 믿음의 공동체에 실제로 새겨져 있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단지 구원받은 개인들의 혼합 집단이나 전세계 다양한 모든 교회 기관들의 총합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모든 문화와 사회적/정치적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하나님 백성들의 공동체’입니다.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 자유와 박해 (조항 5 와13)

로잔운동은 전 세계 많은 기독교인들 중, 많은 방면에서 불공평한 대우를 당하고 소외 당해온 사람들에게 교회가 충분한 결속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세계 복음화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므로, 로잔운동은 하나님이 정의와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해 마음을 기울이신다는 것을 확증합니다. 교회는 때때로 전도가 이 세상의 사회적 행위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에 대해 분명히 설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복음 전파에 대한 헌신은 가끔 가난한 사람들이나 노숙자,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수반되는 고민 없이 전도 활동에만 국한되어 왔습니다. 교회는 예를 들어 빌리 그레이함과 마더 테레사 같은 생생한 증인을 알고 있지만, 이 두 증인들이 서로 연계되었었는지는 반드시 알지 못했습니다. 몇 몇 복음전도자들은 사회적 행위가 전도로 연결되는 다리라고 봅니다. 어떤 이들은 이를 전도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개념 짓습니다. 여전히 또 다른 이들은 그 둘의 관계를 상호보완적 동역 관계라고 봅니다.[113]

로잔운동에 주목할 만한 중요한 세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로잔운동은 사회적 행위를 신학적 맥락에 맞게 반영하여 하나님의 교리와 화목, 공의,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과 연결 짓습니다. 두 번째로, 위 조항들은 전도와 사회적 행위가 ‘상호 배타적’이 아니라는 점을 확증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인성과 사역이 교회의 삶과 증거함에 어떻게 반영되는지에 대한 통합적인 관점을 위한 초석을 쌓습니다. 마지막으로, 로잔언약의 핵심에는 metanoia(또는 회개)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교회가 성경적 증인으로서 일관되게 압제된 사람들을 대신해서 사회적 행위와 정의를 위한 투쟁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입니다.

로잔운동은 또한 신학적으로 세계 인권 선언과 뜻을 나란히 합니다. 사회적 행위는 믿지 않는 세계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당하게 감옥에 갇히고 박해 받고 있는 수만명의 기독교인들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로잔언약은 사단의 개인적 표출과 수만명의 종교적 자유를 앗아가는 사회 구조적 표출 모두를 언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증합니다.

전도 협력과 전도 협력중인 교회들 (조항7 과 8)

로잔운동의 대표적인 특징들 중 하나는 교회를 갈라놓은 쟁점을 초월하고 복음의 핵심적인 메시지 안에서 더 깊은 통합을 이루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로잔운동은 복음적인 운동인 동시에 매우 세계 교회 주의적입니다. 세계 교회 운동의 일부로서 로잔은 세계복음주의연맹과 세계 교회 협의회의 전통에 따르지만, 어떤 면에서 로잔은 기관이라기보다 하나의 운동이기 때문에 부흥한 것도 있습니다. 공식적인 로잔 ‘본부’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네트워크는 전 세계에 걸쳐 있는 12명 남짓의 자원 봉사자들로부터 적은 보수를 받고 일하는 스태프들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로잔운동은 이 세상을 복음화하기 위해 전도적으로 헌신한, 100개가 넘는 문화와 언어권으로부터 온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위해 공통 강령을 제공해 왔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로잔운동은 공식적으로 어떤 조직체나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수많은 기독교 단체들의 나무에 열매가 자라도록 돕는 일을 크나 큰 기쁨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같은 성경적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교제와 사역, 증거함에 있어 긴밀히 연합되어야 한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로잔운동은 전 세계에 종종 도외시되었던 기독교 운동들이 함께 만나 세계 복음화에 있어 실현 가능한 파트너십을 구축할 수 있도록 국제 강령을 제공해 왔습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 운동은 또한 성경 번역과 신학 교육, 문헌 분배, 전도 등에 헌신된 많은 기독교 사회단체(파라처치)들을 연결시키는데 일조했습니다.

복음주의적 과제의 시급성 (조항9)

로잔운동은 얼마나 많은 종족들이 복음의 메시지나 실행 가능한 교회의 표현을 접할 기회가 부족한지에 대해 크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로잔운동은 사람들이 이해할만하고 문화적으로 적용 가능한 방식으로 복음을 접하는 데에 종종 방해가 되는 사회적, 언어적, 문화적, 계급적 장애물을 이해하기 위한 연구의 파도를 일으키는 일을 도왔습니다. ‘미전도 종족 그룹’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와 한 그룹에서 몇 퍼센트의 사람들이 회심해야 그 종족이 ‘전도된’ 그룹으로 선언되는지에 대해 다양한 기준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로 인해 적게는 4,000명에서 많게는 6,000명이 넘는 다양한 범주의 미전도 종족 그룹 수가 정해졌습니다.[114] 그러나, 로잔운동은 전세계 모든 종족들이 복음을 확실히 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의 시급성과 교회의 중요성을 신학적으로 강조합니다. 로잔언약은 보다 부유한 나라에 사는 기독교인들이 생활 방식을 좀더 간결하게 하고 세계 선교 사역을 위해 더 후히 기부할 것을 촉구하기까지 합니다. 또한 이 사역이 ‘서방에서 나머지로 전파하는’움직임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를 위해 선교사들과 다문화적 증인들을 보내고 받는, 모든 대륙의 기독교인들이 공유하는 책임으로 알려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도와 문화 (조항 10)

로잔운동의 또 다른 신학적 특징은 인류 문화를 지지하는 것입니다. 모든 문화에는 예외 없이 인간의 죄성이 확연히 드러나지만, 각 문화에는 ‘아름다움과 선함이 풍부’한 것도 사실입니다. 로잔운동은 하나님이 물리적, 사회적 문화 모두의 근원이자 지지자이심을 확증합니다. 그분의 삼위 일체적 실상 덕분에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관계 지향적이시고, 그분의 창조 때에 주어진 인간의 관계는 피조물 안에서 그분의 존재를 비추어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의 문화를 초월하시면서도 각 문화의 특이성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시기로 결정하셨다는 기독교적 믿음이 로잔의 분명한 입장입니다. 하나님은 인간 문화의 맥락 안에서 자신을 나타내시기로 하셨고 그러므로 우리는 한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태도를 거부해야 합니다. 복음은 모든 문화를 승격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피조물이 침투(전도)하는 모든 현실적 의미는 각 모든 문화의 완전하고도 다면적인 특이성 안에서 전부 표현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교회는 변치 않는 복음의 진리가 이해되고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오랜 역사에 걸쳐 메시지를 문화적 맥락에 관련지어 풀어왔습니다(상황화). 복음의 역사적 본체는 변하지 않지만, 상황화는 “복음의 원본적 메시지와 영향력이 전달될 수 있도록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에 의미 있고 적용될 수 있는” 형식으로 메시지를 ‘번역’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115] 적합한 상황화를 고수하는 것은 복음이 단일 문화권의 시야로만 전달되는 것과 실제 역사적 정황으로부터 지나치게 분리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복음의 진리는 변치않고 문화적으로 한정되지도 않지만, 이 진리들은 문화적으로 체화되지 않는 한 경험될 수도, 기념될 수도, 소통될 수도 없습니다. 신약성경을 포함한 모든 복음적 의사소통은 상황적 맥락 안에 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는 주’와 같은 간단한 표현도 어떤 문화권에는 특정한 언어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상황화는 하나님의 계시의 객관성과 주관성이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줍니다.

교육과 리더십 (조항 11)

로잔운동은 전도가 신학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결정’ 또는 의화론과 동일시되는 환원주의적 구원 관점만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교회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왔습니다. 대신에, 근본적으로 전도에는 훈련된 신자들과 신학적 교육을 받은 크리스천 지도자들의 새로운 세대를 양육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교회와 신학교, 제자양육 기관들의 역할은 전 세계 교회들이 장기적으로 성장하고 유지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나라와 문화가 신학 교육을 접할 수 있어야 하고,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제자 양육과 섬김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반드시 서양식 신학 교육을 전세계로 수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 교역자와 평신도를 훈련시킬 수 있는 다양한 범주의 효과적인 전략들이 개발되어야 함을 뜻합니다

영적 갈등 (조항12)

선교를 하나님이 이 세상에 하시는 큰 사역 안에 넣음으로써 생겨난 중요한 신학적 특징들 중 하나는, 교회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어떤 방침이나 기관적 업무가 아니라 기도와 영적 싸움의 특성에 대한 인식으로 맞서야 하는 전우주적인 영적 갈등에 기인합니다. 교회는 단순히 자유주의 신학이나 위험한 이데올로기, 또는 비기독교적인 종교적 표현에 맞서 싸우는 세력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교회를 무너뜨리고 세계 복음화를 방해하려는 사단의 정사와 권세에 대항하여 영적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로잔운동은 교회의 정결과 신실한 기도, 우리를 둘러싼 영적 세력들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수용합니다.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 신실하고 기도하는 교회가 세계 선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령의 능력 (조항 14)

교회의 몇몇 표현들은 철저히 예수 중심이었으나, 전도와 세계 복음화라는 더 큰 사역에 있어서는 반드시 삼위일체 하나님의 중심성을 수용하지 않기도 했습니다. 로잔운동은, 아버지는 위대한 창조주이시며, 모든 선교의 발송인이자 목표임을 확증합니다. 아들은 하나님의 소명의 구원적 실현입니다. 성령은 이 세상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소명에 능력을 실어주는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성령의 능력과 증거 없이는 누구도 죄를 깨우칠 수도, 그리스도 안에 믿음을 둘 수도, 기독교 신앙 안에서 성장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교회를 새롭게 하고 우리가 이 세상에 영향력 있는 그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능력과 권한을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또한 죄와 죽음이 여전히 존재하는 세상 가운데 교회가 새로운 피조물의 참모습을 나타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성령의 은사와 열매는 교회의 삶과 증거함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조항 15)

마지막으로, 로잔언약은 종말론적 관점에 의해 형성된 견고한 크리스천 역사적 관점을 수용합니다. 이는 즉 영광스럽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예수님의 재림이 인류 역사를 끝내고 그의 구원 계획을 완성시키며, 세상을 심판하고 그의 영원한 왕국을 완전하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교회의 소명을 그리스도의 서거와 재림 사이에 두셨습니다. 로잔은 세계적인 유토피아의 등장이나 하나님의 나라가 종말의 때에 그의 최후의 개입 없이 완전해질 것을 그리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최종 주도와 움직임의 결과로 공의와 평화가 온전히 구현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모든 행동과 순종은 그분이 구원의 계획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주도권에 맞추어 최종적으로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효과적인 사역은 참으로 이 더 큰 신학적 틀(교회가 섬기고 따르는)을 떠나서는 온전히 이해될 수 없습니다.

1974년 대회 말미에 저명한 선교학자 랄프 윈터가 대중에게 처음으로 어떻게 교회 전체가 효과적인 전도에 힘쓰고 있었는데도 새로운 회심자가 약 10억명 밖에 되지 않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다른 문화에 의도적으로 증거하지 않았기에 아직도 20억명 정도가 복음을 듣지 못한 채로 남아있습니다.[116] 나중에 살펴 보겠지만, 이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문화적 장벽을 넘어가는 더 많은 노력이 생겨났습니다.

마닐라 선언과 케이프타운 서약의 신학적 특징

마닐라 선언

두 번째 세계복음화국제대회는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습니다. 이것은 때때로 ‘로잔 II’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전 세계 각지에서 4,000명이 넘는 크리스천 지도자들이 모여 세계 복음화의 진행에 대해 의논하고 1974 대회 이후로 어떻게 선교의 세계와 맥락이 바뀌어왔는지를 돌아보았습니다. 첫 번째 대회 때와 같이, 마닐라 대회는 후에 마닐라선언으로 알려진 선언문을 발표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중요한 점은, 1989년 마닐라 선언과2010년 케이프타운 서약 모두 로잔언약을 대신하거나 로잔운동의 역사적인 신학적 특징들을 바꾸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 문서들의 목적은 로잔언약의 근간을 세우고, 교회가 당면한 과제들, 또는 로잔언약을 좀 더 살펴본 후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신학적 주제들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마닐라선언로잔언약의 본질을 크게 재확인하는 21개의 개회 선언에 맞추어 구성되었습니다. 그 뒤로 12개 조항들과 세계 복음화를 방해하는 특정 신학적, 문화적, 교회적 도전 과제들에 대해 더 깊이 있게 다루는 최종 결론이 이어집니다. 개회 선언에는 로잔언약에 뚜렷이 존재하지 않는 2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역사의 예수님은 영광의 그리스도와 같다는 확증입니다 (선언 5). 이 문장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역사 속에 드러난 성육신의 역사적 현시로부터 분리시키려는 다양한 신학적 시도들에 대한 로잔의 염려를 가중시킵니다. 그리스도가 다른 종교들이나 다양한 문화적 운동들을 통해서도 내포적으로 경험될 수 있다는 발상을 로잔운동은 지지하지 않습니다. 이 점은 조항 3에서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 고백 없이 별도의 언약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관점을 분명히 부정함으로써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마닐라 선언의 두 번째 신학적 특징은 선언18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선교전략을 세우는 더 큰 사역의 일환으로, 사회의 ‘구조와 가치, 필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사회에 대해 더 공부하라는 부르심입니다. 이는 교회가 그 사명을 보다 잘 이루도록 도와주는데 있어 문화, 사회 인류학의 사역을 더 강건하게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닐라 선언으로부터 나온 또 다른 신학적 특징들은 세계 복음화에 있어 변증론의 역할을 분명하게 확증하는 것입니다. 이 대회는 보다 결연한 복음주의적 대응을 필요로 하는 기독교 복음에 대한 지적 도전과제의 급부상을 더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이 선언은 또한 전 세계의 종교적 자유를 옹호하는 것의 중요성을 분명히 주장하면서 세계 인권 선언에 대한 로잔언약의 확증 위에 세워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조항 8에서 마닐라 선언은 세계 선교를 위해 평신도를 훈련시키고, 준비시키고, 평신도에게 권한을 주는 것의 중요성을 크게 주목합니다.

마닐라 선언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1989 대회 때 루이스 부시가 1990년에 ‘10/40 창’으로 묘사됐던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이는 적도 북위 10도에서 40도까지에 이르는 세계 영역을 말하는데, 이 곳에 전 세계 2/3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빈곤의 정도가 가장 심하면서도 복음을 가장 접하지 못한 지역입니다. 이를 통해 이슬람, 힌두, 불교의 대표적인 중심지역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펼치는 12개의 선교 단체들과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케이프타운 서약

세 번째 세계복음화 국제대화는 201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열렸습니다. 198개국에서 4,200명이 넘는 복음 지도자들이 모여 세계 복음화의 진행상황에 대해 성찰해 보았습니다. 대회 이전에, 세계 교회가 언급해야 할 필요가 있는 주요 신학적, 문화적 쟁점들을 판별하기 위해3년간의 공부와 세계 교회로부터 듣는 과정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물인 케이프타운 서약은, 한편으로 로잔언약의 모든 신학적 특징들에 대한 확증을 명확하게 대표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복음이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전 세계에 전파될 수 있는지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틀을 제시합니다. 케이프타운 서약은 새로운 신학적 특징들을 도출해내기보다, 수많은 새로운 세계 정황들에 실행되고 적용될 수 있도록 논의를 재구성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케이프타운에서의 모임은 서양의 기독교인들보다 ‘세상의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더 많이 참여한 첫 번째 대회였습니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역사상 가장 다양한 기독교인들이 모인 모임이었습니다.

케이프타운서약로잔언약마닐라선언의 기본 확증들을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주제에 맞춰 재정리했습니다. 로잔운동의 주요 신학적 특징들을 제시한 로잔언약의 기념비적인 성취에 대한 폄하 없이, 하나님의 사랑은 전체 문서에서 단 한번 언급되었습니다. 로잔언약의 사실성을 유지하되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더 큰 맥락 속에서 발표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갈수록 분명해졌습니다. 케이프타운서약은 하나님의 사랑에 맞추어 이 운동의 전체적인 신학적 작업을 재구성합니다. 이 문서는 2 개의 주요 파트로 나뉘어집니다. 첫 부분은 로잔언약의 조항 1이 새롭게 표현된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한다.’ 와 같은 10가지 중심 주제에 맞추어 정리됩니다. 문서는 그 뒤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버지를, 아들을, 성령을, 하나님의 세상을, 하나님의 복음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사랑한다.”라고 확증하는 조항들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케이프타운서약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특징입니다.

문서의 두 번째 파트는 로잔운동의 대표적인 여러 주제들을 재언급하는 여섯 가지 주요 주제들을 다룹니다. 케이프타운서약에서 새로운 몇 가지 특징들이 강조되었는데, 그 중에는 하나님의 창조물을 돌보는 것(파트 II, II,5)과 번영신학을 우상 삼는 것에 대한 강한 비판(파트V, 4)이 있습니다. 이 문서는 갈수록 복음에 적대적이 되어가는 무너진 세상 가운데에서도 교회가 신실하게 서 있어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이 문서는 또한 점점 더 다양해지는 교회와, 교회가 로잔에서 열린 로잔대회의 본래 주제 (‘모든 교회가, 모든 세상에, 모든 복음을 가져다 준다.’)를 완수할 수 있도록 보다 더 큰 협력과 진정한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 명확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선교학적 영향

이 장 두 번째 부분의 목적은 로잔운동의 보다 큰 선교학적 영향력에 대해 살펴보는 것입니다. 다섯 가지 주제 하에 이를 살펴볼 것입니다.

삼위일체 선교학의 환원과 ‘Missio Dei’(하나님의 선교): 선교의 하나님과 선교하는 교회

로잔언약의 조항 1과 14에서 언급되고 차후의 문서들에서 더 명백해진 바대로, 로잔은 복음적 세계 선교 운동에 더 완전한 삼위일체적 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단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핵심적 선포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큰 틀 안에서, 성령의 능력 있는 역사와 더불어 재조명되어야 합니다. 선교를 개념화하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이 missio Dei (하나님의 선교)라는 문구는 1934년 선교학자 칼 하텐스타인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그 후 1952년, 독일 빌링겐에서 개최된 국제선교협의회가 후원한 주요 컨퍼런스에서, 비록 직접적으로missio Dei라는 문구를 쓰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의 구원적 행위가 교회보다 우선된다는 신학적 강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문구는 나중에 1963년 게오르그 휘체돔의 대표 저서 하나님의 선교: 선교 신학의 입문의 출간과 함께 선교에 있어 주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휘체돔은 선교란 우리가 ‘아들을 보내시는’ 아버지의 소명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견식 있게 이를 개념화 하였습니다. 휘체돔은 “우리가 참여하고 있는 선교 운동은 그 근원을 삼위일체 하나님 그 자체에 둔다.”라고 선언했습니다.[117] 그러나, 이 개념을 적용함에 있어 교회는 점점 하나님의 소명과 연결성을 잃어갔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구원적 활동의 주 무대로 세상에 중심을 맞췄고 교회와 그 구원적 선포는 하찮은 존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교회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역할은 단지 사회가 인간화를 위해 투쟁을 벌이는 곳이나 세상에서 하나님의 샬롬이 나타나는 곳을 가리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일과 교회의 생애와 증거함을 분리시키는데 관련이 된다는 이유로missioDei 문구를 기피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로잔운동은missio dei 의 개념을 다시 소개하고 교회가 하나님의 소명이 이 세상에서 펼쳐지는 데 있어 중심적 역할을 하며, 다름아닌 교회가 하나님의 구원적 목표라는 분명한 이해와 missio dei 의 신학이 재연결 되는 데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공평을 기하자면, 이 missio dei 의 교회학으로의 재연결은 로잔 리더들의 의도였다기보다는 수백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로잔운동의 중추인 지역 회의 및 주제별 회의에서 정기적으로 모여 선교에 대해 토론한 합당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으로의 접근성에 대한 강조: 종족 그룹에서부터 세계 이민 패턴까지

20세기에 가장 중요한 선교학적 발견은 지상 명령 본문이 열방을 제자화하고 세계 모든 종족에게 복음을 전달하는 것에 관한 것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신약에서 ‘열방’이라는 단어는 헬라어ethne를 번역한 것으로, ‘사람들 그룹’ 또는 ‘종족 그룹’을 뜻합니다. 랄프 윈터가 개척한 미전도 종족과 루이스 부시의 10/40창 개념은 로잔운동 내 교회들에게 널리 수용되어 이 역점들이 로잔 유물의 일부가 되는데 일조한 두 가지 필수적인 시야입니다.

이는 단지 세계 선교에 있어 더 깊은 신학적 바탕을 가져다 준 것 뿐만 아니라, 수백만 명의 새로운 크리스천들과 지금까지는 크리스천 복음을 접할 수 없었던 수만 개의 새로운 종족 그룹 교회들에게 번역이 되었습니다. 20세기로 접어들었을 때, 전 세계 개신교인의 10%만이 서양 외 국가들에 살았고,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은 서양에 살았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세계 역사상 가장 다양한 운동입니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갈수록 많은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합니다. 로잔운동은 세계적으로 많은 새로운 교회 개척 운동들을 촉발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고, 서양의 많은 새로운 교회들이 로잔언약을 그들의 신앙 선언문으로 사용합니다.

그 중에서도 여호수아 프로젝트의 뛰어난 업적과 미전도종족 입양 운동, AD 2000 & Beyond운동, 남부 침례교의 국제 선교 이사회에서 진행한 대규모 연구, 월드 크리스천 데이터베이스는 로잔의 노력 없이는 오늘날의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로잔운동의 시작부터 함께해 온 사람으로서 공정하게 관찰해온 바를 말하자면, 로잔은 선교의 실천 면에 더 집중해 온 결과 때때로 좋은 신학적, 선교학적 고찰을 해쳤습니다. 형성기에, 존 스토트와 빌리 그래함은 신학적 명료성과 사역적 실천성의 유일무이한 파트너십을 보여주었습니다. 두 분 다 각자가 더 넓은 운동의 성공과 지속 가능성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로잔운동은 점점 세계화되고 다양해지고 덜 중앙집권적이 되어갔습니다. 실제로, 오직 마지막 10년 동안만 로잔은 세계의 대표적인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점점 더 선교의 실천과 세계 크리스천 운동에 있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관계를 구축하는 것의 일반적 가치에 초점이 맞추어 졌습니다. 그러나, 만약 로잔이 계속해서 활동적인 힘이 되고자 한다면, 운동의 신학적 기반과 보다 깊은 선교학적 고찰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 세계 교회 주의의 출현: 전세계 기독교의 변화와 “서양에서 나머지로 선교한다는 패러다임”의 붕괴

1990년 크리스천 히스토리 잡지에서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100가지 사건들을 나열했을 때,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대부분 국가들에서 열리거나 그들에 의해 시작된 그 어떤 사건에 대한 단 하나의 언급조차 없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오늘날의 관점에서, 교회들이 얼마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크리스천 교회들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세계적 발전들을 늦게 알아차리는지 잊어버리곤 합니다. 선교 실천은 서양의 중요한 교회가 움직여 비서양 세계에 복음을 전한다고 가정하는 패러다임 안에서 큰 틀을 잡았습니다. 다름 아닌 로잔운동이 세계 기독교계의 많은 새로운 목소리들에 음성을, 말 그대로 강단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로잔운동은 떠오르는 세계 지도자들을 발굴하는데 헌신된 몇 가지 주요 컨퍼런스들을 후원해왔습니다. 전 세계로부터 1,500명의 지도자들이 함께 모였던 2004년 태국 파타야 상담에서, 로잔은 그 리더십과 회의에서의 대의권, 그리고 운동이 완전히 세계화되는 데 방해가 되는 구조적, 언어적, 문화적 도전과제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대해 보다 의도적으로 세계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118]

20세기로 들어설 무렵 8백만에서 세기 말 4억2천 3백만이 된, 독립적이고도 고유한 기독교 운동의 성장은 마침내 기독교 단체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구통계적 변화들 중 하나로 인정되었습니다. 필립 젠킨스의 다가올기독교왕국이나 기독교의새로운얼굴, 하나님의대륙과 같은 저서들 속 글들은 로잔운동에서 현실이 된 것들을 대중화 시켰습니다.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서양 교회는 새로 떠오르는 선교지 상황과 가장 활동적이고 성장 중인 세계 기독교 운동들이 수 세기 동안 선교지로 여겨졌던 곳들에 위치해 있음을 마침내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세계 복음화가 ‘전 교회가 총체적 복음을 전 세계로’라는 완전한 협동 없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더 큰 복음의 재발견: 전 세계를 위한 총체적 복음

20세기 초반 몇 십년 동안 복음주의 운동은 위험스럽게도 우리의 더 큰 책임인 가난한 자들을 섬기고, 불의에 맞서 싸우고, 사람들을 덫에 빠뜨리고 권리를 박탈하는 더 큰 구조적 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인식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보다 총체적인 복음은 언제나 복음주의의 유산이었고 선교운동에서만큼 이에 전념하는 운동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의 근본주의- 근대주의 논쟁은 전도를 역사적으로 교회의 생애와 관련 없는 방향으로 사회적 행동에서 양극화시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대체적으로, 근본주의는 복음을 개인적인 구원의 차원으로만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반면, 근대주의는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개인적 회개나 믿음보다는 우리의 더 넓고 공동적인, 사회적 증거함을 더 강조하였습니다. 물론, 복음은 둘 다를 포함합니다. 교회가 더 큰 구원적 소명을 중심으로 형성되도록 돕고 활력을 불어넣어 준 것이 다름아닌 로잔운동이었습니다. 전도와 사회적 행동의 관계에 관한1982년 로잔 상담이 교회들로 하여금 이 주제를 재정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 몇 가지 행사들 중 하나였습니다. 오늘날, 로잔운동을 통해 형성된 수백만 명의 크리스천들이 인신매매부터 가난, 창조 세계를 돌보는 일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실, 로잔운동은 기독교인들이 크리스천 증인의 합당한 유산인 주제들을 더 잘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주는 수백 개의 주제들을 다루는 수십 개의 상담들을 수 년에 걸쳐 후원해 왔습니다.

전 교회와의 더 깊은 협동: 파트너십의 새로운 이해

앞서 살펴본 로잔의 모든 주요 문서들을 하나로 연합시키는 주제들 중 하나가 세계 교회와의 더 깊은 협동으로의 부르심, 특히 세계 교회의 더 넓은 ‘복음적 가족’을 하나로 모으는 일 입니다. 특별히 초기 몇 십년 간 로잔운동은 대형 기독교 기관과 협동하는 것을 피해 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로잔운동은 특히 세계 복음화를 향한 로잔의 핵심 서약을 공유하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이 운동들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로마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 주요 개신교회 간 의미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했습니다. 로잔은 또한 ‘기관’보다는 ‘운동’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하나의 운동으로서, 로잔은 다양한 그룹들이 세계 복음화를 향한 헌신을 매개로 함께 만나고 협력할 수 있는 특별한 무대를 만들어 줍니다. 하나의 기관으로, 로잔은세계복음주의 연맹과 같이 오랫동안 존재해 온 다른 기관들과 마주하여 혼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로잔은 다른 기관 및 기독교 협회, 교회 운동의 주최자를 위한 ‘무대’로 남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로잔은 전세계적으로 선교에 있어 실용적인 사역의 파트너십이 근본적으로 촉진될 수 있도록 도와줄 때에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로잔운동은 구체적으로 파트너십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초점을 맞춘 주요 토의들을 촉진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2004년 태국 파타야에서 열린 세계 복음화 포럼에 1,500명 이상의 세계적 지도자들이 전도의 걸림돌로 알려진 31개의 주제들을 놓고 토론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파타야에서 토의된 가장 중요한 주제들 중 하나가 건강한 파트너십에 대한 주제였습니다. 그 때까지 파트너십이라고 묘사해왔던 것 중에는 힘과 돈이 관련될 경우 불가피하게 생기는 세력 차이로 인한 건강하지 못한 관계들이 여전히 포함됐음을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진솔하고 공개적인 대화의 장이 열렸고 이는 전 세계를 아울러 실제 선교에 매우 중요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세계의 가장 가난한 지역에 설립된 교회들이 세계 교회에 금전적 액수로는 환산할 수 없는 풍부한 자산을 가져다 줌을 마침내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론

로잔운동은 세계 복음화에 일조하는 강력하고 뚜렷한 힘으로 남아 있습니다. 1974년 로잔의 원 의장들은 그들이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운동을 촉발시키고 있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로잔의 신학적 유산은 세계 교회에 가장 지속되는 공헌들이었습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매우 분명하게 로잔운동으로부터 출발하는 역사적인 크리스천 믿음은 사실 동일하게 강력한 선교학적 영향력의 근간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적 특징과 선교학적 영향력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부족한 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새로운 크리스천들에게 크나 큰 축복을 준, 이런 운동을 일으키게 해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존귀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로잔의 무대 없이는 세계 교회가 이토록 놀라운 장소들에서 함께 만나 예배하고 토론하고, 수많은 세계 문제들에 대해 협력하여 놀라운 열매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국에는, 로잔은 문서나 세계적 모임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로잔은 크리스천들이 우리 세대에 ‘총체적 복음이 전 교회로부터 전 세계로 전해지는’ 것을 보고자 이같은 헌신을 공유하며 함께 일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119]

 

[109]로잔운동의 근간이 되는 세가지 문서는www.lausanne.org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장의 모든 인용들은 따로 표시되지 않은 이상 모두 로잔언약, 마닐라선언, 케이프타운서약 이 세 문서로부터 왔습니다.

[110] 성경의 권위의 복음적 이해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존 스토트의The Authority of the Bible (Grand Rapids, MI: InterVarsity Press, 1999)를 참고하십시오. 로잔운동은 “오류가 없다”는 말을 그 어떤 세부적 내용에도 오류가 없다고 이해하는 입장과 비록 저자들이 모든 세세한 역사적, 과학적 사실들에 있어 항상 정확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또는 한 가지 사건에 대해 다른 세부 사항이나 폭넓은 요약적 증언들이 다수의 증인들로부터 나왔을 때에도 성경은 온전히 신뢰할 만 하다는 제한적 무오성을 지지하는 입장 모두를 수용해 왔습니다.

[111] 존 스토트의 The Cross of Christ, study edition (Grand Rapids, MI: InterVarsity Press, 2010)을 참고하십시오.

[112] 교회학과 전도의 특성 간의 관계에 대한 토론을 더 보고 싶으시면 시몬 챈의 Liturgical Theology (Grand Rapids, MI: IVP, 2006)를 보십시오.

[113] 전도와 사회적 행동 간의 관계에 관해 더 자세한 복음주의적 토론을 보고 싶으시면 티모시 테넌트의 Invitation to World Missions: A Trinitarian Missiology for the 21st Century (Grand Rapids, MI: Kregel, 2009), 387-406를 보십시오.

[114] 선교 단체들이 ‘종족 그룹’을 정의하고 ‘전도된’ 혹은 ‘미전도된’ 종족을 결정하는 데 다른 기준들이 사용됩니다. 가장 중요한 세가지 공공 데이터베이스(모두 다른 기준을 사용)는 www.joshuaproject.net 과 http://imb.org/globalresearch/, http://worldchristiandatabase.org/wcd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전도 종족 그룹에 대한 토론에서 로잔의 역할과 어떻게 이 주제가 지난 40년 간 발전되었는지에 대한 전체 토론을 보시려면 티모시 테넌트의Invitation to World Missions, 354-386를 보십시오.

[115]Bruce J. Nicholls and David Hesselgrave, Communicating Christ Cross-Culturally, 143, 144.

[116] 1974년 대회 이전에 모든 대표들에게 전송된 보고서와 로잔에서 한 실제 연설을 포함한 랄프 윈터의 연설 전문은www.lausanne.org/documents에서 이용 가능합니다.

[117] 게오르그 비체돔의 The Mission of God: An Introduction to the Theology of Mission; 길버트 티엘레 와 데니스 힐겐도르프 역(Saint Louis, MO: Concordia Publishing House, 1965), 5. 비체돔은 한스 하텐스타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118] 파타야에서 만난 사역 그룹이 완성한 모든 보고서는 세 권으로 출판되었습니다. 데이빗 클레이든의 A New Vision, A New Heart, A Renewed Call (Pasadena, CA: William Carey Library, 2005)를 보십시오. 이 중 다수의 보고서들은 www.lausanne.org/documents에서 또한 이용 가능합니다.

[119] ‘전 교회가 총체적 복음을 전 세계에’라는 로잔의 유명한 문구는 세계 교회의 위대한 선교적 사명을 가리킵니다. 이 사명은 로잔운동과 연결된 사람들이나 특정 교단, 기관, 운동 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모든 시대와 나이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에 비로소 온전히 완성될 위대한 공동의 목표를 가리키는 비전적 문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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