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타운 서약 신앙고백과 행동

차례

머리말

전언

I.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을 위하여: 케이프타운의 신앙고백

1. 우리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하나님을 사랑한다

2.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사랑한다

3. 우리는 성부 하나님을 사랑한다

4. 우리는 성자 하나님을 사랑한다

5.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사랑한다

6.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

7. 우리는 하나님의 세상을 사랑한다

8.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사랑한다

9.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한다

10.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를 사랑한다

II. 우리가 섬기는 세상을 위하여: 케이프타운의 행동 요청

서론

IIA. 다원적이고 세계화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증거하기

IIB. 분열되고 깨어진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루기

IIC. 타종교인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살아내기

IID. 세계복음화를 위한 그리스도의 뜻을 분별하기

IIE. 겸손하고 온전하며 단순한 삶으로 돌아가도록 교회 부르기

IIF. 선교의 일치를 위해 그리스도의 지체 안에서 동역하기

결론

머리말

198개국에서 온 4,200여 명의 복음주의자들이 2010년 10월 16일부터 25일간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세계복음화를 위한 제3차 로잔대회에 참가했다. 대회의 규모는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에서 참여한 수천 명의 참가자들로 인해 더 확대되었다. 무엇을 위해? 바로 전 세계 교회, 국가, 사회의 모든 영역과 체제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친 모든 것을 증거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기 위해서다.

케이프타운 서약은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다. 이 서약은 로잔 언약과 마닐라 선언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것의 역사적 연속선상에 있다. 이 서약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성경적 확신들로, 2부는 그에 따른 행동 요령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의 작성 과정은 이렇다. 전 세계(6대륙)에서 초청된 열여덟 명의 신학자들과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2009년 12월 미국 미니아폴리스에 모여 처음으로 케이프타운 서약에 관해 논의했다. 로잔 신학위원회 위원장인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주도한 이 소그룹은 케이프타운 대회에 제출할 최종 서약문의 작성을 준비했다.

2부의 작성 과정은 다음과 같다. 대회를 개최하기 3년 전부터 광범위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로잔운동의 국제 총무들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제기하고 오늘날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주요 내용들을 가지고 지역별 협의회를 준비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부각된 여섯 가지 주요 이슈들은 대회의 프로그램을 규정하고(i), 그 이슈들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관한 골격을 구성했다(ii). 이러한 청취 과정은 대회 기간 내내 크리스토퍼 라이트와 로잔 문서위원회가 대회에서 발표된 모든 진지한 시도들과 공헌들을 성실하게 기록하는 것으로 지속되었다. 그것은 중요한 작업이었으며 기념비적인 노력이었다.

케이프타운 서약은 앞으로 10년 이상 로잔운동의 로드맵 역할을 할 것이다. 일하면서 기도하라는 케이프타운 서약의 예언자적 부르심은 교회, 선교단체, 신학교, 직장의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학생선교단체들로 하여금 그 서약을 수용하고 현장에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케이프타운 서약의 교리적 진술들은 교회가 믿는 바를 확증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믿음이 실천과 연결되기 바란다. 우리의 모델인 사도 바울은 자신의 신학적 가르침을 실천적인 삶으로 구현시켰다. 골로새에서 행한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대한 그의 도전적이면서 경이로운 진술은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실제적인 가르침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우리는 일치해야 하는 기본적 진리들인 기독교 복음의 핵심과 성경이 가르치고 요구하는 것에 대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일치하지 않는 이차적인 주제들을 구분한다. 우리는 여기서 “범위 안에서의 포용”이라는 로잔의 원리를 따랐는데, 1부에서 이러한 범위들을 명백하게 규정한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과 각각의 준비 단계부터 우리와 함께 했던 세계복음주의연맹(World Evangelical Alliance)과의 협력을 기쁘게 생각한다. 세계복음주의연맹 지도자들은 신앙고백과 행동지침에 관한 우리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해주었다.

복음주의 전통을 따르는 로잔운동을 전개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됨을 확증할 뿐 아니라, 다른 기독교 전통들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기꺼이 인정한다. 우리는 케이프타운 로잔대회의 참관인으로 참여했던 다른 기독교 전통들의 교회 대표들을 환영하며, 케이프타운 서약이 전 세계 교회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겸허한 마음으로 이 서약을 제시한다.

케이프타운 서약으로 우리가 기대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는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이 이 서약을 하나 된 목소리로 거론하고 논의하며, 중요한 문서로 제시하기를 바란다. 또한 이 서약이 기독교 사역의 의제를 형성하고, 공공 분야에서 사려 깊은 지도자들을 굳건하게 하며, 담대한 출발과 협력을 이끌어 내기를 기대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길에 빛을 비추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더글라스 버드셀(로잔 위원회 의장), 린지 브라운(로잔 국제총무)

서문

예수 그리스도의 전 세계적 교회의 지체로서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기꺼이 헌신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로잔운동의 비전과 목표에 대한 우리의 지속적인 헌신을 확인한다.

이러한 우리의 헌신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우리는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모든 가르침을 전 세계에 증거해야 할 사명을 여전히 갖고 있다. 1974년 세계복음화의 과제를 위해 소집되었던 제1차 로잔대회는 전 세계적 교회에 주어진 결실로 수많은 미전도 종족들을 새롭게 인식하게 했으며, 성경적 복음, 그리고 기독교 선교의 통전성에 대한 새로운 발견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 198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차 로잔대회는 전 세계 국가들 간의 협력에 참여했던 수많은 지도자들을 포함해 세계복음화를 위한 300개 이상의 전략적인 동반자적 협력 관계를 탄생시켰다.

둘째, 우리는 로잔운동의 핵심 문서인 로잔 언약(1974)과 마닐라 선언문(1989)에 지속적으로 헌신한다. 이 두 문서는 성경적 복음이라는 핵심 진리들을 분명하게 제시하며, 그 진리들을 여전히 적실하며, 도전적인 방식으로 우리 선교 현장에 적용한다. 우리는 이 문서들에 담았던 헌신에 충실하지 못했음을 고백하며, 끊임없이 변하는 우리 세대와 이 세상 속에서 영원한 복음의 진리를 어떻게 전하고 적용할 것인지를 분별하면서 두 문서에 담았던 헌신을 권고하고 실천하고자 한다.

변하는 실재들

우리의 삶과 사고, 그리고 관계를 맺는 대부분의 삶의 방식들은 급속히 변하고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세계화와 디지털혁명, 정치적 ‧ 경제적 힘의 균형의 변화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직면하는 전 세계적인 빈곤, 전쟁, 질병, 생태 위기, 기후 변화 같은 사건은 우리를 슬프게 만들고 불안하게 한다. 그러나 그러한 엄청난 변화에도 환영할 만한 것이 있다. 바로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제3차 로잔대회가 아프리카에서 개최되었다는 사실은 이것에 대한 증거이다.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최소한 3/4이 비서구권에 살고 있다. 이번 로잔대회의 참석자들의 구성은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 이후 한 세기 동안 세계 기독교의 중심이 거대한 전환을 맞았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 우리는 아프리카 교회의 놀라운 성장을 환영하며 아프리카 형제자매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 대회를 개최한 것에 감사한다. 우리는 기독교 선교에 있어 우리 세대가 직면한 변하고 있는 실재들에 응답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이전 세대에게 물려받은 지혜와 실수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

변하지 않는 실재들

변하는 세상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 이 위대한 진리는 우리의 선교에 성경적 원리를 제공한다.

  • 인간은 잃어버린 존재이다. 성경이 묘사하는 비참한 인간의 근본적인 상태는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죄와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아래 있으며 그리스도 없이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존재들이다.
  •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복음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는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증거를 필요로 하는 이야기다.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과 통치에 관한 것으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행하셨던 변하지 않는 이야기이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소망이 있다.
  • 교회의 선교는 계속된다. 하나님의 선교는 땅 끝까지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 계속된다. 이 세상 나라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때, 새로운 창조를 통해 하나님이 그분의 구속받은 인류와 함께 거하실 때, 마침내 그 날이 도래할 것이다. 그 날이 올 때까지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교회의 선교는 즐거운 긴장감 속에서 계속되며, 우리 세대를 포함해 다가오는 모든 세대들 속에서 새롭고 가슴 떨리는 기회들이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열렬한 사랑

이 선언은 사랑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은 언약의 언어이다. 성경이 말하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은 잃어버린 인류와 오염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과 은혜의 표현이다. 그분의 사랑과 은혜는 다시 사랑, 곧 그 자체로 언약의 주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과 열정적인 헌신을 보여 주는 우리의 사랑을 요청한다. 로잔언약은 복음화를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것은 여전히 우리의 열렬한 마음이다. 따라서 우리는 로잔 언약을 재차 확증한다.

  • 죄와 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파괴되었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창조세계의 모든 차원에 미치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기쁜 소식으로서의 온전한 복음을 위해 우리의 사랑을.
  •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과 전 역사의 모든 세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았고, 이 세대에 하나님의 선교를 공유하고, 오는 세대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온 교회를 위해 우리의 사랑을.
  •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으나 그분이 마음으로 품으신 세상, 곧 사랑하셨기에 세상의 구원을 위해 그분의 독생자를 주신 온 세상을 위해 우리의 사랑을.

이와 같은 삼중적인 사랑에 사로 잡혀 있는 우리는, 온 교회가 온전한 복음을 믿고, 그 복음에 복종하며, 복음을 나누기 위해, 그리고 모든 열방을 제자 삼기 위해 온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데 우리 자신을 새롭게 헌신한다.

I.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을 위하여 케이프타운 신앙고백

1. 우리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흘러나온다. 하나님의 백성의 선교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과 하나님이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사랑에서 흘러나온다. 세계복음화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우선성을 확신하고, 따라서 믿음으로 그 은혜에 응답하며 사랑을 통해 그 믿음을 드러낸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우리의 죄를 위한 대속물로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기에 하나님을 사랑한다.(주1)

A)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모든 율법과 예언서를 지탱하는 처음이자 가장 위대한 계명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자 성령의 첫 번째 열매이다. 사랑은 거듭남의 증거이자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확증이며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는 증거이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새 계명으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그들의 선교가 가시화되며 신뢰할 수 있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성육신하신 아들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시는 방식이다. 사랑은, 바울이 믿음과 소망과 함께 새로운 신자들에게 당부했던 첫 번째 요소이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하기 때문에 그 중에서 가장 위대하다.(주2)

B) 이러한 사랑은 결코 연약하거나 감상적이지 않다. 하나님의 사랑은 언약에 있어 신실하며, 헌신적이며, 자기희생적이며, 강하며, 거룩하다. 하나님은 사랑이기에 그분의 전 존재와 행위, 그리고 그분의 긍휼뿐 아니라 그분의 공의 가운데 사랑은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창조세계 전체로 확장된다. 우리는 이 모든 차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 사랑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길을 따라 걷는다는 의미이다.(주3)

C)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사랑의 관점에서 우리의 확신과 헌신을 견고케 할 때 다음과 같은 가장 기초적이면서 노력을 필요로 하는 성경적 도전이라는 과제를 받는다.

  1.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2. 타인과 원수를 포함해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
  3.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서로 사랑하라.
  4. 세상의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사랑하라.(주4)

D) 이러한 사랑은 우리의 마음에 부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지만 이 사랑은 우리가 의지적으로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랑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으로, 인내 가운데 강건하고, 겸손 가운데 온유하고, 악에 대해 끈기 있게 저항하고, 고난당하는 자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사랑하고,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죽음에 직면해서도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은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에서 모범으로, 영광 가운데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의해 잣대로 제시되었다.(주5)

우리는 이러한 포괄적인 성경적 사랑이 예수님의 제자들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확증한다. 예수님의 기도와 명령에 대한 응답으로 이 사랑이 우리의 것이 되길 우리는 간절히 바란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너무나 자주 그렇게 행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하나님과 서로에 대한, 그리고 세상에 대한 사랑–의 길을 걷는다는 의미를 구현하는 삶을 살아내며,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려는 모든 노력에 우리 자신을 새롭게 헌신한다.

2.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은 주권적인 뜻과 구원의 목적에 따라 모든 것을 다스리는 유일하고 영원한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자신을 성경에서 계시하신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의 하나됨 안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창조주이고 통치자이며 심판자이고 세상의 구세주이시다.(주6) 따라서 우리는 창조세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위치를 기뻐하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에 순종하고, 그분의 공의를 확신하며, 우리를 위해 이루신 구원을 영원히 찬양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

A)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그분을 예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이스라엘처럼 우리는 이 세상의 신들, 곧 이방인의 신들을 섬겨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변질시켰다.(주7) 우리는 하나님 대신 맘몬을 섬기며 탐욕과 권세와 성공이라는 우상에 현혹되어 혼합주의에 빠졌다. 우리가 성경에 근거해 판단하지 않고 이 세상의 지배적인 정치적 ‧ 경제적 풍조에 휩쓸려 있음을 우리는 부인하지 못한다. 우리는 종교 다원주의의 압력에 굴복해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타협하도록 유혹받고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예언자들과 예수님의 회개에의 요청을 듣고 다른 신들을 버리며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하고 예배하기 위해 돌아가야 한다.

B)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열심을 다해 그분을 사랑한다. 우리의 선교의 최고의 동기는 그분의 모든 창조세계를 통해 알려지고 그것들로부터 영광 받으셔야 할 참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 자신이 주도하는 선교와 동일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 되어야 한다.

존 스토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나라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모든 입술이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이 종종 사용하듯이) 그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 ‘특심'(jealous)을 내야 한다. 이 특심이 알려지지 않을 때 문제가 생기고, 이것이 간과될 때 상처받으며, 이것이 우상숭배로 나타날 때 분노하게 되며, 이것이 하나님께 경와와 영광을 드리길 언제나 갈망하며 단호한 태도를 갖게 한다. 모든 선교적 동기들 가운데 최상의 동기는 (중요하지만) 지상명령에 대한 순종도 아니고,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할 때 특히 더 강하게 드러나는) 소외되고 멸망당하는 죄인들에 대한 사랑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불꽃처럼 타오르는 거룩한 열심이다. 이러한 기독교 선교의 궁극적 목표 앞에 모든 무가치한 동기들은 사라지게 된다.”(주8)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이 영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슬픔이어야 한다. 공격적인 무신론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고 세상의 많은 종교들은 유일하고 참된 하나님을 대체하고 왜곡하고 있다. 대중문화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매도하고 거짓되게 알리고 있다. 성경이 계시한 하나님의 모습은 기독교 명목주의와 혼합주의, 그리고 위선 등으로 퇴색되어 버렸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왜곡하는 세상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담대하지만 겸손하게 하나님을 증거할 것을 요청하신다. 이러한 증거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에 대해 강력하지만 은혜로운 증거, 죄를 깨닫고 확신케 하는 성령의 사역에 대한 신실한 믿음에 기초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증거를 위해 우리 자신을 헌신한다.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분의 최우선적 관심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그분의 이름과 말씀은 모든 것 위에 높임을 받으시기에 마땅하기 때문이다.(주9)

3.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한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아들,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 사랑할 수 있다. 성령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듯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르고 기도하라 말씀한 예수님의 기도를 따라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의 사랑의 교통 가운데 우리 안에 내주하는 것처럼, 순종을 통해 증명되는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만난다.(주10) 이러한 친밀한 관계는 확고한 성경적 근거를 갖는다.

A) 우리는 그분의 백성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사랑한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 아버지, 곧 그들의 존재의 근거이며, 그들을 인도하고 훈련시키며, 그들에게 순종을 요구하고, 그들의 사랑을 간절히 바라며 긍휼 가득한 용서와 끝까지 사랑하는 분으로서 그분을 알았다.(주11)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에게도 참되다.

B)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사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아버지의 사랑을 어떻게 측량할 수 있겠는가! 독생자를 주신 아버지의 사랑은 자신을 내어준 아들의 사랑으로 나타났다. 아버지와 아들은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구속 사역 가운데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나타내셨다. 아버지는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다.” 예수를 통해 확증된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됨은 바울의 서신에서 반복적으로 나오는 다음의 문안 인사에 반영되어 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넘치기를…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영광이 그에게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주12)

C) 우리는 우리가 닮아야 할 성품을 보여 주고 신뢰할 만한 돌봄을 베푸시는 성부 하나님을 사랑한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우리의 삶의 모범 혹은 중심으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반복해 제시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선행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가 찬양을 받으신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본받아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눈으로 자비와 기도와 금식을 실천해야 한다. 아버지가 우리를 용서하시듯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 우리는 근심하지 말고 아버지의 공급하심을 신뢰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성품에서 흘러나오는 이러한 행위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을 이룬다.(주13)

우리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이라는 진리를 무시하고 그분과 우리의 풍성한 관계를 깨뜨렸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에게 나아가며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 응답하며, 아버지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살고, 우리의 모든 행위와 태도에서 아버지의 성품을 반영하고,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를 인도하는 아버지의 섭리를 신뢰하기 위해 우리의 헌신을 새롭게 다짐한다.

4. 우리는 성자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은 전심으로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셨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만 홀로 구세주이며 주님이고 하나님이심을 확고하게 믿는다는 뜻이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아버지와 동등하게 주권적으로 자신의 사역을 수행한다고 가르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창조주이며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며 열방을 판단하는 심판자이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모든 이들의 구세주이시다.(주14) 그분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신적인 동등성과 본성을 공유하신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언약적 신앙과 순종, 그리고 섬김을 증거로 자신을 사랑하라 부르셨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순종하며 전파하므로 그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확증한다.

A) 우리는 그리스도를 신뢰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듯이 나사렛 예수가 모든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구원의 축복을 가져오는 분이며, 이스라엘의 특별한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에게 지명되어 보냄을 받은 메시아라는 복음서의 증거를 믿는다.

  1. 예수님의 탄생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의 육신을 취하셔서 완전한 하나님과 완전한 인간으로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2. 예수님은 전 생애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실함과 순종으로 자신의 길을 걸으셨다. 그분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가르치셨으며,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법을 제자들에게 친히 보여 주셨다.
  3. 예수님은 사역과 기적을 통해 사단과 악의 권세를 제압하고 하나님 나라의 승리를 선포했고 승리를 보여 주셨다.
  4.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우리를 대신해 모든 형벌과 수치를 당하심으로 우리의 죄값을 온전히 치르셨고 죽음과 악의 권세를 물리치고 모든 피조물을 위한 화해와 구속을 성취하셨다.
  5. 예수님은 육체적 부활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그분의 신성을 입증 받았고 높임을 받았으며, 구속받은 인류의 본이 되었고 만물을 회복하셨다.
  6. 승천하신 예수님은 주님으로서 모든 역사와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다.
  7.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고 사탄과 악과 죽음을 물리치며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를 실현하실 것이다.

B) 우리는 그리스도께 복종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종이 되어 순종하며 자신을 따르는 제자로 부르신다. “만일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 계명을 지키라.”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여, 주여 부르느냐. 내가 말한 것들을 행하지 않느냐?”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것처럼 살고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셨던 것처럼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계명을 무시하며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은 위험하고도 어리석은 행위이다. 예수님은 화려하고 기적적인 사역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높이려는 많은 사람들을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 하시고 그들을 거절할 것임을 경고하셨다.(주15) 우리 중 누구도 그러한 무서운 위험에서 제외될 수 없기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경고에 유의해야 한다.

C) 우리는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고도 궁극적으로 자신을 계시하셨으며, 그리스도 한 분만을 통해 세상의 구원을 성취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제자로서 나사렛 예수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베드로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한 도마의 신앙을 동일하게 고백한다. 비록 우리는 그분을 볼 수 없지만 그분을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을 얼굴을 맞대고 볼 그날, 곧 그분이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며 소망 가운데 즐거워한다. 그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는 베드로와 요한의 고백을 한다.(주16)

우리는 오직 순종하며 살 때에 가능한 그분의 가르침을 온 세상에 증거하는 데 헌신할 것을 새롭게 다짐한다.

5.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는 삼위일체의 하나됨 가운데 성부 하나님과 그의 아들과 함께 성령 하나님을 사랑한다. 성령은 하나님의 선교적 교회에 생명과 능력을 불어넣는 선교적 하나님과 선교적 아들의 영이시다. 그리스도에 대한 성령의 증거가 없는 한 우리의 증거는 헛되기에 우리는 성령을 사랑하며 그분의 임재를 기도한다. 죄를 깨닫게 하는 성령의 사역 없이 우리의 설교는 헛되며, 성령의 능력이 없는 우리의 선교는 단지 인간적인 노력일 뿐이다. 성령의 열매 없는 우리의 무기력한 삶은 복음의 아름다움을 결코 반영하지 못한다.

A)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영이 창조와 해방과 공의 같은 모든 종류의 섬김을 위해 사람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여 능력을 부어주시는 등의 역사를 활발하게 하고 있음을 본다. 성령으로 충만한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자신의 인격과 사역에 인치심을 받을 만왕의 왕이자 섬기는 종으로 오실 메시아를 갈망하며 기다렸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새로운 순종을 위해 그분의 영을 부어주실 시대의 도래를 고대했다.(주17)

B) 하나님은 예언자들과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오순절에 그분의 성령을 부어주셨다.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은 신자들의 삶에 열매를 맺게 하시는데 그 첫 열매는 언제나 사랑이다. 성령은 그의 은사들과 선교를 위한 능력, 다양한 섬김의 사역들로 교회를 충만케 하신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선포하고 제시하며 진리를 분별하고 바르게 기도하고 어둠의 세력들을 물리칠 능력을 주신다.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할 때 박해를 받거나 시련을 당하는 제자들을 강하게 하시고 평안을 주신다.(주18)

C) 따라서 선교에 참여하는 우리는 성령의 임재와 능력 없이는 목적을 성취할 수 없고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한다. 이것은 전도, 진리 증거, 제자 훈련, 화평케 함, 사회참여, 윤리적 변혁, 창조세계를 돌봄, 악한 세력을 물리침, 악의 권세에 대한 승리, 병든 자의 치유, 박해와 고난으로부터의 인내 같은 모든 선교적 활동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것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 성취된다. 신약성경은 초대교회의 삶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해 이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오늘날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성령의 능력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기대 속에서 사역하는 교회의 열매와 성장을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성령의 인격과 사역, 그리고 능력 없다면 온전한 복음도 진정한 성경적 선교도 없다. 우리는 전 세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성경적 진리에 대한 보다 새로운 각성이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신약성경에서처럼 성령이 아닌 다른 영들을 따르고 예배함으로 성령의 이름을 가장하는 거짓된 시도들이 있음을 인식하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그와 같은 기만적인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하고, 부정하고 이기적인 방법으로 재물을 쌓기 위해 영적 능력을 악용하는 삯꾼 같은 이들의 죄악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어느 때보다 냉철한 분별력을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 보통의 신자들로 하여금 참된 복음을 이해하고 진리 안에서 기뻐하며 거짓된 복음을 분별하고 거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겸손한 기도로 무장한 성경적 설교와 가르침이 절실히 요청된다.

6.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

“내가 주의 말씀을 정금보다 사랑하나이다…얼마나 내가 주의 율법을 사모하는지요”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에 우리는 기쁨으로 화답하며 신구약성경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 우리는 인간 저자들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성경을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신한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행위를 주관하는 궁극적이고 유일한 권위로 성경을 따른다. 우리는 성경이 구원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능력임을 엄중히 선언한다. 우리는 성경을 능가하는 또 다른 계시는 존재하지 않으며 최종적으로 기록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고히 지지한다. 또한 우리는, 성령이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을 조명하여 모든 문화권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도록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인다.(주19)

A) 성경이 계시하는 인격. 우리는 남편이 보낸 편지 자체가 아니라, 남편의 마음을 담고 있는 편지를 사랑하는 아내와 같은 심정으로 성경을 사랑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본성과 인격, 목적과 사역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계시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본원적 증거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며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놀라운 기쁨을 누린다. 성경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B) 성경이 말하는 이야기. 성경은 창조, 타락, 역사적 구속, 새 창조에 대한 우주적 이야기이다. 이 중요한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분명한 성경적 세계관을 제공하며 동시에 우리의 신학적 기초를 형성한다. 이 이야기들의 정점은 복음의 핵심을 구성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인류 최대의 구원 사건이다. (신구약성경에 나오는) 이 이야기들은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말해 준다. 하나님의 선교에 관한 이 이야기는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우리의 선교를 주도하며, 마지막 때에 임할 하나님 나라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의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소망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인류 전 역사를 통해 전해져야 할 복음의 내용을 담고 있다. 성경의 메시지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성경을 전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문맹 상태에 있는 지역과 전통적으로 구술 문화권인 지역을 포함해 모든 문화와 언어 가운데 성경을 번역하고 반포하며 가르쳐야 할 과제를 성취하는 데 헌신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C)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가 알아야 할 완전한 진리, 곧 하나님의 뜻을 증거한다. 성경은 거짓되지 않으며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이 증거하는 모든 것들이 참되고 확실한 진리임을 믿고 성경 말씀에 복종한다. 성경은 구원의 길을 계시하는 데 있어 분명할 뿐 아니라 충분하다.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의 모든 차원들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된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를 기만하고 거부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절대적 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알려질 수도 없다고 주장하는 상대주의가 많은 문화들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성경을 사랑한다면 성경의 진리 주장들을 수호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나 모든 문화들 가운데 성경의 권위를 분명하게 제시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드러내야 할 일환으로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를 고수하는 데 헌신할 것을 재차 다짐한다.

D) 성경이 요구하는 삶. “말씀이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으므로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예수님과 야고보는 단지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되라고 요구하신다.(주20) 성경은 신자들과 신자들의 공동체를 측정하는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아브라함부터 모세, 시편 기자들, 예언자들과 이스라엘의 지혜자들, 예수님과 사도들로부터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찬양, 그리고 신실한 삶의 기초인 정의, 긍휼, 겸손, 청렴, 정직, 진실함, 순결, 관용, 친절, 자기부인, 환대, 화평케 함, 보복하지 않음, 선행, 용서, 기쁨, 자족과 사랑 등을 포함하는 성경적 생활양식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합당한 삶, 곧 그런 삶을 살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는 삶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다고 너무나 쉽게 말해왔다. 그러나 “변화된 삶보다 복음을 감동적으로 전하는 것은 없으며, 이것만큼 개인적 삶의 모순에 대한 냉혹한 평가도 없다. 우리는 거룩한 삶을 통해 복음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복음의 ‘빛’을 비추는 삶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치를 나타내야 한다.”(주21)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복음을 믿을 뿐 아니라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에 헌신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성경적 삶 없이 성경적 선교는 없다.

7. 우리는 하나님의 세상을 사랑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반에 걸친 그분의 섭리와 공의를 즐거워하며, 모든 피조물과 모든 열방에 기쁜 소식을 선포하고,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온 땅에 가득 찰 그날을 고대하며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열심을 함께 나눈다.(주22)

A)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사랑한다. 이 사랑은 (성경 어디에서도 명령하지 않은) 자연에 대한 단순한 감상적인 애정이나 (성경이 분명히 금하고 있는) 범신론적 예배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돌봄으로써 나타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사랑의 논리적 결과이다. “이 땅은 우리가 사랑하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소유이다.” 이 땅은 우리가 주님이라고 부르는 그분께 속해 있기 때문이다.(주23)

이 땅은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되고 유지되고 구속받는다.(주24) 우리는 그리스도의 창조와 구속과 상속의 권한으로 그리스도의 것을 남용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세상의 원리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 이 땅을 돌보고 그 풍성한 자원들을 책임감을 갖고 정당하게 사용해야 한다. 예수님이 온 세상의 주님이시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이 세상에서의 삶의 방식과 분리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이 모든 창조세계를 포괄하는 것이기에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복음 선포는 창조세계 전체를 향한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세계를 돌보는 것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나타내는 복음적 이슈이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우리가 지구상의 자원들을 파괴하고 허비하며 오염시키는 데 일조하고 무분별한 소비주의에 대한 해악적인 숭배를 회개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긴박하고도 예언자적인 사명감으로 환경보호의 책임을 완수하는 데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환경보호를 중요한 선교적 사명으로 깨달은 그리스도인들과,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풍성함을 통해 인간의 필요를 채우라는 명령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지지한다. 우리는 성경이 창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적 목적을 선포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총체적 선교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복음이 죄로 인해 깨지고 고통당하고 있는 개인과 사회, 창조세계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기쁜 소식이라는 성경적 진리를 명확하게 인식, 이를 선포하고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개인과 사회와 창조세계 모두 하나님의 구속적 사랑과 선교의 대상이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총체적 선교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B) 우리는 이 세상 나라와 문화를 사랑한다. “하나님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해 땅 위의 모든 나라를 만드셨다.” 인종적 다양성은 하나님의 창조의 선물이며, 이것은 죄로 말미암은 타락으로 인한 분열과 적대감에서 해방될 때 새 창조 안에서 보전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이 땅의 모든 열방들을 축복하라는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족속과 언어와 나라와 백성들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선교를 반영한다. 우리는 모든 문화들을 포함해 하나님이 축복하기 위해 택하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기독교 선교는 토착문화와 언어를 보호하고 보전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 모든 문화 속의 인간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형상의 긍정적인 증거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사탄과 죄의 부정적인 흔적들도 보여 주기 때문에 비판적인 분별력을 발휘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모든 문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깊게 스며들어 그 문화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광채의 충만함이 드러나길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과 죄사함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로서 하나님 나라의 모든 문화적 풍성함과 영광과 탁월함을 보게 되기를 고대한다.(주25)

모든 백성들을 향한 이러한 사랑은, 우리가 인종주의와 자민족 중심주의라는 악을 거부하고, 창조와 구속 안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가치에 근거해 모든 종족과 문화들을 존중하고 존경할 것을 요구한다.(주26)

이러한 사랑은 우리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문화들에 복음을 전파할 것을 요구한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어떤 종족도 세계복음화라는 지상명령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복음전도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 흘러넘친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전혀 듣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모든 가능한 수단들을 사용하기 위해 시작된 로잔운동 이후 고취되었던 헌신을 새롭게 한다.

C) 우리는 이 세상의 가난한 자들과 고통받는 자들을 사랑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이 만든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억압받는 자들을 위하고, 나그네들을 살피며, 굶주린 자들을 먹이고, 고아와 과부들을 돌보신다고 말한다.(주27) 또한 성경은 하나님은 그러한 일에 헌신한 사람들을 통해 일하길 원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이 사회의 정치적 ‧ 법적으로 지도자인 이들에게 그러한 책임을 부여하신다.(주28) 그러나 율법과 예언서, 시편과 지혜서, 예수님과 바울, 야고보와 요한이 증거한 대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정의를 실천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드러내라는 명령을 동일하게 받았다.(주29)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이러한 사랑은, 우리가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것만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모든 것들을 폭로하고 반대하는 행위를 통해 정의를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악이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악과 불의를 고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주30)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열정을 함께 나누고, 하나님의 사랑을 구현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실패했음을 부끄러움으로 고백한다. 우리는 소외되고 억압받는 자들과의 연대 책임과 그들을 응원하는 것을 포함해 정의를 촉진하는 일체의 사역에 새롭게 헌신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과 지속적인 기도로 십자가와 부활의 승리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영적 전쟁의 차원에서 악에 대항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한다.

D)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 예수님은 율법의 두 번째 큰 명령으로서 이 계명에 복종하라고 제자들에게 말하고 (같은 장에서) “국외자를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요구를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요구로 심화시키셨다.(주31)

이웃을 향한 이러한 사랑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하고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는 가운데 복음의 심정으로 모든 사람을 대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이웃 사랑에는 타종교 사람들도 포함하며, 우리를 미워하고 비방하며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들에게까지 확대된다. 예수님은 악의 사슬을 끊기 위해 진리로 거짓을 대항하며, 친절과 자비와 용서의 행위로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항하고, 자기희생으로 그의 제자들에 반대하는 폭력과 살인에 맞서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며 폭력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에 대한 폭력적인 보복의 유혹을 거절한다. 이러한 불복종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신 본과 신약성경의 가르침과 모순된다.(주32) 동시에 고통받는 이웃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의무는 죄를 범한 자들을 징벌하는 데 있어 법적인 지위와 국가적 권위를 갖고 있는 자들에게 적절히 호소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종의 역할을 수행케 함으로써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한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주33)

E)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한 창조세계는 하나님께 대적하는 인간의 세상과 사탄의 세상으로 왜곡되었다. 우리는 죄악된 욕망과 탐욕과 오만으로 만연되어 있는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듯 변질된 세상의 세속적 가치에 집착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훼손되고 복음의 증거가 부정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백한다.(주34)

우리는 타락한 세상과 덧없는 세상의 욕망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것처럼 온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 새롭게 헌신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창조세계와 모든 문화가 구속과 회복을 바라며, 땅 끝까지 이르러 모든 열방들로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 모든 파괴와 빈곤과 증오를 불식시키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으로 세상을 사랑한다.

8.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사랑한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복음의 사람이다. 우리의 정체성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라는 성경의 기쁜 소식에 대한 우리의 열망에 있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땅 끝까지 이르러 그 은혜의 복음을 전하려는 동기로 하나가 된다.

A) 우리는 나쁜 소식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기쁜 소식을 사랑한다. 복음은 인간의 죄와 타락과 욕망의 비참한 결과들에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 이러한 죄악된 상태에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고, 서로를 소외시켰으며, 창조 질서로부터 소외되었다. 우리는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회개하지 않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영원한 멸망과 형벌을 받으며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격리될 것이다.(주35) 죄의 결과와 악의 권세는 인간성의 모든 (영적 ‧ 육체적 ‧ 지적 ‧ 관계적) 차원을 부패시켰다. 이 타락은 인류의 모든 문화와 역사를 통해 문화적 ‧ 경제적 ‧ 사회적 ‧ 정치적 ‧ 종교적 차원 등을 포함해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인간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만들었으며, 하나님의 모든 창조세계에 심각한 손상을 주었다. 이러한 비참한 상태에 반해 성경의 복음은 실로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B) 우리는 복음이 말하는 이야기를 사랑한다. 우리는 복음을 나사렛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기쁜 소식으로 선포한다.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으로 예언된 메시아이자 왕이신 예수님을 통해 그분의 나라를 세우셨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땅에 있는 모든 열방들이 복 받을 수 있도록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해 행동하셨다. 바울은 복음을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고, 묻히셨으며, 성경에 따라 제 삼 일 만에 부활하셨고 베드로와 열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라고 진술한다. 복음은 십자가에서 아들의 모습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죄로 인해 심판을 받으시려 하나님 자신이 못 박히신 사건이다. 이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은 사탄과 죽음과 모든 악의 권세를 물리치고 결정적인 승리를 하셨으며, 우리를 사탄의 권세와 두려움에서 해방하셨고, 어둠의 세력들의 궁극적 파멸을 확증하셨다. 그분은 모든 장벽과 대립을 불식시키고 하나님과 믿는 자들과의 화해와 사람들 사이에 화해를 이루셨다. 또한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모든 피조물의 궁극적인 화해를 이루셨고,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 가운데 새 창조의 첫 열매를 우리에게 주셨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세상과 화해시키셨다.”(주36) 우리가 어떻게 복음의 이야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C) 우리는 복음이 확증하는 것을 사랑한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신뢰함으로 우리는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의롭다는 함을 받았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더 이상 정죄를 받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죄 용서함을 받았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새 생명을 통해 산 소망 가운데 거듭났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와 양자가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과 시민, 곧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고 하나님의 처소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리스도를 신뢰함으로 우리는 온전한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의 구원이 우리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역사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이다.”(주37) 우리가 어떻게 이 복음의 약속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D) 우리는 복음이 가져온 변화를 사랑한다. 복음은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주38) 믿음만이 복음의 축복과 확신을 얻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나 구원하는 믿음은 믿음 자체만으로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순종하는 삶을 통해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의 순종은 “사랑을 통해 표현되는 믿음이다.”(주39) 우리는 선한 행위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기 위해 창조되었다.”(주40)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주41) 바울은, 복음이 하나님의 은혜, 곧 우리의 구원을 이룬 그리스도의 초림에서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재림의 소망 가운데 우리에게 윤리적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치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서 만들어낸 윤리적 변화를 보았다.(주42) 바울에게 ‘복음에 순종하는 것’은 은혜를 신뢰하는 것이자 은혜에 의해 교훈을 받는 것을 의미했다.(주43) 바울의 선교적 목표는 모든 열방 가운데 ‘믿음의 순종’을 일으키는 것이었다.(주44) 이러한 강력한 언약적 언어는 우리에게 아브라함을 떠올리게 한다. 아브라함은 그를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믿음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순종했다.”(주45)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와 믿음은 복음이 요청하는 첫 번째 행위이며,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지속적인 순종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을 통해 복음의 믿음만으로 가능한 생활방식이다.(주46) 따라서 순종은 구원하는 믿음의 가장 분명한 증거이자 열매이다. 또한 순종은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의 시금석이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주47)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주48) 우리가 어떻게 복음의 능력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9.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사랑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며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 거하기 위해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사랑하고 선택하고 부르고 거룩하게 하신 모든 세대들과 모든 열방들로부터 부름을 받은 백성이다. 하나님이 영원에서 영원까지, 그리고 완악하고 반역적인 우리의 행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백성으로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셨기에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하나님과 친밀한 자들이 되며…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처럼 우리도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계명이다. 그러한 사랑은 복음에 대한 순종의 첫 번째 증거이며 세계 선교의 강력한 원동력이다.(주49)

A) 사랑은 하나됨을 요구한다. 제자들에 향한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하나 되어야 한다는 그분의 기도로 연결된다.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과 하나됨을 위한 기도는 본질적으로 선교적이다.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될 것이다.” “당신[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알 것이다.”(주50) 복음의 진리는 인종과 피부색, 사회적 지위, 경제적 특권, 정치적 노선 같은 세상의 고질적인 분열의 장벽들을 넘어서 그리스도인들이 사랑 안에서 하나 될 때 비로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이들과 같이 분열할 때 복음에 대한 우리의 증거는 신뢰를 잃고 만다.

우리를 분열시킨 모든 것들을 포기하지 못했음을 우리는 고백한다. 우리를 분열시켰던 원인 중 하나로 전 세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발견되는 극심한 물질적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 우리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이러한 불평등은 모든 이들을 위한 성숙한 상호관계와 서로를 돌아보라는 바울의 가르침과 간구와 모순되는 것이다.(주51) 우리는 선교를 위한 우리의 열망을 저해하는 적대적 경쟁을 강하게 비난한다. 우리는 전 세계 교회들이 갖고 있는 선교를 위한 유용한 자원들의 편중 현상에 대해 개탄한다.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대륙을 초월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성숙한 사랑과 겸손한 동반자적 협력에 근거한 새로운 전 세계적 균형을 긴박하게 촉구한다. 또한 우리는 말로만 서로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그리스도의 영광과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서도 이러한 연합을 추구한다.

B) 사랑은 정직할 것을 요청한다. 사랑은 은혜 가운데 진리를 말한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과 예수님보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했던 이들은 없다. 나아가 언약의 주님에 계속해서 대적하고 태만하며 우상을 숭배하며 거역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해 그들보다 더 정직하게 이 문제에 직면했던 이들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할 것을 부르짖었고, 그들로 하여금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회복시켰다. 이와 같은 예언자적 사랑의 목소리가 같은 이유로 오늘날에도 선포되어야 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예수님에게 인도해야 할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며 그분의 아름다움을 가리는 우리의 추악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퇴색하고 있음을 우리는 말할 수 없이 슬퍼하며 고통스러워한다.

C) 사랑은 연대를 요청한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무엇보다 믿음과 복음 증거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아 감옥에 갇힌 자들을 돌보는 것을 포함한다. 몸의 한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모든 지체가 고통을 느낀다. 사도 요한의 말처럼 우리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들이다.(주51) 우리는 정보 공유와 중보기도, 영적 ‧ 정신적 지지와 가능한 모든 지원 방법을 통해 전 세계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신자들의 고통에 헌신적으로 동참할 것을 다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단순히 동정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깨달은 바를 박해받지 않은 교회와 나누며 함께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부유함과 자기만족에 빠져 편안함을 추구하는 교회는, 자신의 헐벗음을 깨닫지 못한 채 문 밖에 서 있는 외인 같이 될 수 있다는 예수님의 경고를 잊지 않아야 한다.(주52)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은혜를 통해 모든 죄악 된 장벽을 허물고 열방에서 불러낸 모든 제자들로 하여금 화해의 친교을 나누는 한 가족이 될 것을 요청하신다. 그러한 교회는 성령의 교통을 나누는 은혜와 순종과 사랑의 공동체이다. 그러한 공동체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속성들과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성품을 반영하고 하나님의 다양한 지혜를 풍성하게 드러낸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명백한 현재적 표현인 교회는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그들을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구세주를 위해 살아가는 화해를 이룬 신자들의 공동체이다.

10.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를 사랑한다

우리는 세계 선교에 헌신한다. 세계 선교가 하나님과 성경, 교회와 인류 역사, 그리고 종국적인 미래를 이해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성경 전체가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화해를 이루신 그리스도가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을 하나 되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찬양케 하는 하나님의 선교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교를 성취하기 위해 죄와 악으로 파괴된 피조물을 죄나 저주가 더 이상 없는 새로운 피조로 변화시키신다. 하나님은 메시아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인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 이 땅의 모든 열방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심판 아래 흩어진 모든 열방들과 방언들과 종속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여 새로운 피조물 되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구세주를 찬양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생명과 공의와 평화의 영원한 통치를 위해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은 죽음과 부패와 폭력의 통치를 무너뜨리실 것이다. 그리고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고 세상 나라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이며, 그분의 영원한 다스림을 받게 될 것이다.(주53)

A)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함. 하나님은 자신의 선교에 동참케 하기 위해 그분의 백성들을 부르신다. 열방의 모든 교회는 메시아 예수를 통해 구약성경의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연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과 함께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 부르심을 받았고 열방을 축복하고 그들을 비추는 빛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그들과 함께 우리는 죄와 고통의 세상 속에서 거룩하고 긍휼이 넘치는 정의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 율법과 예언자들을 통해 교훈을 받아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속받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일을 증거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을 받았다. 교회는 영원토록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며, 역사 속에서 변혁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의 선교는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를 다루며, 십자가의 구속적인 승리에 그 중심을 둔 하나님의 선교로부터 나온다. 이것이 우리의 소속이며, 우리는 우리가 고백하는 믿음과 우리가 참여하는 선교를 함께 하는 백성들이다.

B) 우리의 선교의 총체성. 우리의 모든 선교적 자원은 성경에 계시된 것처럼 온 세상의 구속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이다. 우리의 복음전도 과업은 모든 열방에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알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선교적 상황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곧 죄와 고통과 불의와 창조질서의 파괴로 가득 차 있는 세상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위해 그런 세상을 사랑하고 섬기도록 우리를 보내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선교는 복음전도와 사회참여가 통합된 형태여야 한다. 복음전도와 세상에의 참여는 하나님의 복음의 온전한 성경적 계시에 의해 질서 잡히고 주도된다.

“복음전도는 하나님과의 화해를 위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께 나아오도록 설득하는 것이며, 동시에 구세주이자 주님이신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이다…복음전도의 결과는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연합, 그리고 세상에서의 책임감 있는 봉사 등을 포함한다…우리는 복음전도와 사회적 ‧ 정치적 참여 모두가 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확증한다. 이 둘은 모두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우리의 믿음과 이웃에 대한 우리의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의 필수적인 표현 방식이다…우리가 선포하는 구원은 개인과 사회 전체를 변화시켜야 하는 통전적인 복음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주54)

“총체적 선교는 복음을 선포하는 것인 동시에 복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복음전도와 사회참여가 서로 나란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의 선포는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사랑과 회개를 요청하는 것이기에, 총체적 선교 안에서 우리의 선포는 사회적 중요성을 내포한다. 또한 우리의 사회참여는 사람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거하는 것이기에 복음전도의 중요성을 갖는다. 세상을 무시하는 것은 세상을 섬기기 위해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서 세상에 무엇인가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주55)

우리는, 하나님이 부르신 그분의 교회에 대한 총체적이고 역동적인 활동의 모든 선교적 차원에 헌신한다.

  •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회개, 믿음, 세례(침례), 그리고 순종이라는 제자도로 부르며,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복음을 모든 열방에게 전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긍휼 어린 돌봄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고, 정의와 평화를 위해 힘쓰며 하나님의 피조물을 돌보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능력을 드러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대한 응답과 그분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통해 우리는 성령의 도움으로 자기를 부인하는 겸손과 기쁨과 용기를 갖고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에 우리 자신을 헌신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과의 이 언약을 갱신한다.

2부 우리가 섬기는 세상을 위하여: 케이프타운의 행동 요청

서론

하나님과 맺은 우리의 언약은 사랑과 순종을 하나로 묶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를 기뻐하신다.(주56)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주57)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전 세계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힘썼다. 우리는 에베소서 강해를 통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전 세계의 그분의 백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들었다. 케이프타운 대회에서 논의된 6개의 주제들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전 세계 교회가 직면해 있는 도전들과 미래의 우리의 우선순위를 분별하기 위한 준거를 제공한다. 이러한 서약들이 교회가 고려해야 할 모든 문제는 아니며, 모든 지역에서 동일한 우선순위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IIA. 다원적이고 세계화된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진리 증거하기

1. 진리와 그리스도의 인격

예수 그리스도는 만유의 진리이시다. 그리스도는 진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의 진리는 (i) 명제적일 뿐 아니라 인격적이며 (ii) 상황적일 뿐 아니라 보편적이고 (iii) 현재적일 뿐 아니라 궁극적이다.

A)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는 진리의 사람들로 부름받았다.

  1. 우리는 진리를 살아내야 한다. 진리를 살아낸다는 것은 우리가, 어두운 마음에 복음의 영광의 빛을 계시하시는 예수님의 얼굴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를 위해 신실함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자들의 얼굴에서 진리를 볼 것이다.
  2. 우리는 진리를 선포해야 한다. 복음의 진리를 말로 선포하는 것은 우리의 선교에서 월등한 부분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진리를 살아내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행위와 말은 반드시 함께 가야만 한다.

B) 우리는 교회 지도자들과 목회자들과 복음전도자들이, 바울처럼 복음의 우주적인 범위와 진리를 온전히 전파하고 가르칠 것을 강권한다. 우리는 복음을 단순히 개인적 구원이나 다른 신들이 주는 것보다 더 나은 해결책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는 온 우주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제시해야 한다.

2. 진리와 다원주의의 도전

문화적 ‧ 종교적 다원주의는 존재하는 사실이며, 특히 아시아의 그리스도인들은 오랫동안 문화적 ‧ 종교적 다원주의 상황에서 살아왔다. 종교들은 자신들의 길이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타종교의 경쟁적인 진리 주장을 존중하고 함께 공존하려고 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던적이며 상대주의적인 다원주의는 다르다. 그것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종교들의 진리 주장을 관용하기는 하지만, 문화적으로 형성된 것 이상으로 보지 않는다. (이러한 입장은 논리적으로 자기 파괴적인데, 왜냐하면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주장을 절대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원주의는 궁극적 가치로서 “관용”을 주장하지만 세속주의나 공격적인 무신론이 공적 영역을 지배하는 국가에서는 억압적인 모습이 될 수 있다.

A) 우리는 확고한 변증이라는 어려운 과제에 더욱 헌신하고자 한다. 이것은 다음의 두 가지 수준으로 나타난다.

  1. 우리는 공적 분야에서 성경적 진리를 수호하고 설득하는 데 있어 최상의 지적 ‧ 공적 수준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그들을 구비시키고 위해 기도해야 한다.
  2. 우리는, 교회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이 진리가 일상적인 공적 대화와 예언자적 적실성을 갖고 모든 신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도구들을 구비하여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문화적 상황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3. 진리와 일터

성경은 인간의 노동에 관한 하나님의 진리를 창조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의 일부로 우리에게 제시한다. 성경은, 우리가 여러 소명들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듯이 우리의 노동 전체를 하나님을 섬기는 노동의 삶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성속의 분리”라는 허위가 교회의 사고와 행동에 스며들어왔다. 이러한 이분법은, 종교적 활동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세상적 활동은 하나님께 속해 있지 않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소위 세속적 일)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하나님은 삶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주님이시다. 바울은 세속적 일터에서 일하는 종들에게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주58)고 가르쳤다.

비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는 일터는 복음전도와 변혁을 초래할 중요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교회만이 그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신자들을 구비시키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주되심 아래 삶의 모든 것을 드리지 못했던 것처럼 일 자체가 갖는 성경적이며 본질적인 의미를 깨닫는 데 실패했다.

A) 이러한 성속의 분리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을 동원하는 것을 방해하는 주요 장애물로, 우리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비성경적인 가정들을 거부하고 그 해로운 영향들에 저항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지역적 ‧ 타문화적) 사역과 선교를 그리스도의 몸의 적은 부분을 차지하는 전임 사역자들과 선교사들의 사역으로 간주하려는 경향을 거부한다.

B) 우리는, 모든 신자들이 일상사역과 선교를 하나님이 불러 세우신 모든 일터로 받아들이며 이를 확증하도록 촉구한다. 우리는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성도들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봉사[사역]를 위해 그들을 구비시키며 그러한 사역–공동체와 일터–에서 사람들을 도울 것을 요청한다.

C) 우리는 삶 전체의 제자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켜도록 노력한다. 이것은 일상적인 생활과 일터에서 선교적 효율성을 추구하며 성경적 세계관으로 살아가고, 생각하고, 일하고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양한 기술과 무역과 사업이라는 전문 분야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전통적인 교회개척자들과 복음전도자들이 갈 수 없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이러한 “텐트메이커들”과 비즈니스 종사자들의 일터 사역은 지역 교회들의 사역의 한 영역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D) 우리는 교회 지도자들이 일터 사역의 전략적 영향력을 이해하고 교인들을 선교사로 동원하고 구비하여 지역 공동체의 일터와 전통적으로 복음증거를 거부하는 국가들에 파송할 것을 촉구한다.

E) 우리는 선교 지도자들이 “텐트메이커들”을 세계적 선교 전략 안에 통합할 것을 촉구한다.

4. 진리와 전 세계적 미디어

우리는 미디어 문화 가운데 그리스도의 진리를 드러내는 자들로서 미디어와 테크놀로지 분야에 비판적이면서 창조적인 방법으로 참여할 것을 다짐한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청한다.

A) 미디어에 대한 인식: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수용하는 메시지와 세계관에 대한 보다 비판적인 인식을 갖도록 한다. 미디어는 중립적이며 때로는 복음에 우호적이지만 포르노, 폭력, 탐욕에 악용되기도 한다. 우리는 목회자들과 교회들이 이러한 이슈들에 개방적으로 접근하고 신자들이 그러한 압력과 유혹을 거부하도록 교육하며 이에 대한 지침을 제공할 것을 권장한다.

B) 미디어의 실재: 일반적인 정보 미디어와 연예 미디어 분야에서 확실하고도 신뢰할 만한 기독교적 역할 모델들과 커뮤니케이터들을 발굴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영향력을 미치는 훌륭한 수단들로서 해당 분야의 경력자들을 격려한다.

C) 미디어 사역: 통전적인 성경적 세계관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통적인’ 미디어와 기성 미디어아 새로운 미디어의 상호작용을 위한 창의적이고 통합적인 용도를 개발한다.

5. 진리와 선교에서의 예술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창조성이라는 은사를 갖고 있다.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예술은 인류로서 우리가 행하는 통전적 행위의 일부이며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진리를 반영하는 것이다. 최고의 예술가들은 진리를 말하는 자들이며 따라서 예술은 복음의 진리를 말하는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드라마, 춤, 이야기, 음악, 그리고 시각 이미지는 우리의 분열이라는 실재와 복음의 핵심으로서 만물이 새롭게 될 것이라는 소망의 실재를 드러내는 표현들이다.

선교에 있어 예술은 미개척 분야이다. 우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술 분야에 참여할 것을 적극 독려한다.

A) 우리는 모든 문화 속에서 교회가 다음의 선교를 위한 상황으로서의 예술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기를 갈망한다.

  1. 우리를 향한 제자도로의 부르심이라는 타당하고 가치 있는 구성 요소로서의 신앙 공동체의 삶으로 예술을 되가져오도록 한다.
  2. 예술적 은사를 가진 그리스도인 형제자매들을 후원하여 그들의 사역이 번창하도록 지원하도록 한다.
  3. 예술이 우리의 이웃과 타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는 친숙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한다.
  4.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고 토착적인 예술 표현들을 경축하도록 한다.

6. 진리와 부상하는 기술 문명들

21세기는 바이오, 인포/디지털, 가상실재, 인공지능과 로봇기술 같은 부상하는 테크놀로지의 진보를 이룬 “바이오테크놀로지 세기”이다. 이것은 특히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성경적 진리와의 연관성에서 교회와 선교에 깊은 함의를 가진다. 우리는 테크놀로지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우리의 인간성을 조종하고 왜곡하며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보전하고 구현하는 데 사용될 수 있음을 확증하기 위해 공공정책 분야에서 진정한 기독교적 응답과 실천을 촉구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청한다.

A) 지역교회 지도자들은 (i) 과학, 테크놀로지, 건강, 그리고 공공정책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신자들을 격려하고 후원하며 문제를 제기하고 (ii) 그리스도인들이 해당 분야에 참여할 필요성을 학생들에게 신학적으로 신중하게 제시하도록 한다.

B) 신학교는 커리큘럼에 이러한 분야들을 포함시켜 미래 교회 지도자들과 신학자들이 새로운 테크놀로지에 대해 정확한 기독교적 비판 능력을 함양하도록 한다.

C) 정부, 경제, 학계, 기술 분야에서 신학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테크놀로지 분야에 참여하기 위해 국가나 지역의 ‘씽크탱크’와 동반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성경적이며 적실한 발언을 함으로써 공공정책 형성에 영향을 미치도록 한다.

D) 모든 지역 기독공동체들은 창조된 인간성의 물질적 ‧ 감정적 ‧ 관계적 ‧ 영적 양상들을 통합하는 실제적이고 통전적인 돌봄을 통해 인간 삶의 독특한 존엄성과 신성함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 주도록 한다.

7. 진리와 공적 영역

정부, 기업, 학계가 연계된 영역들은 각 국가의 가치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인간적 용어로 교회의 자유를 규정한다.

A)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사회적 가치를 형성하고 공적 논의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 서비스나 개인사업 분야에서 해당 영역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학문적 탁월성과 성경적 진리를 추구하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학교와 대학교를 지원할 것을 촉구한다.

B) 성경은 부패를 정죄한다. 부패는 경제발전을 침식하고 공정한 결정을 왜곡하며 사회적 응집력을 파괴한다.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국가는 없다. 우리는 이 문제에 최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창조적으로 구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일터의 그리스도인들, 특히 젊은 기독교 기업가들을 초청한다.

C) 우리는 젊은 기독교 학자들이 성경적 세계관으로 (i) 가르치고 (ii) 훈련시키는 법을 개발해 그들의 주요 전문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세속 대학에서 장기적으로 활동하기를 권장한다. 우리는 학술연구를 무시하지 않는다.(주59)

IIB. 분열되고 깨진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평화 이루기

1.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평화

하나님과의 화해는 이웃간의 화해와 분리되지 않는다. 우리의 평화이신 그리스도는 십자가로 평화를 이루고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분열된 세상에 평화를 선포하셨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하나됨과 연합은 하나의 실재(“그는 둘로 하나를 만드시고”)이자 수행해야 할 명령(“평안의 띠 가운데 성령의 연합을 지속하려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며”)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피조물을 하나 되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새로운 인류의 종족 사이의 화해 모델이다.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복음의 능력이다.(주60)

우리는 이방인을 묘사하는 데 있어 유대인이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에서 제외되지 않았다는 바울의 주장을 확증하는 동시에, 유대인이 여전히 메시아 예수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해야 할 위치에 있음도 확신한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죄인이라는 점에서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구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바울은 말한다.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고 오직 그분 안에서와 한 성령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주61)

A)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온 교회가 메시아이며 주님이시고 구세주이신 예수님에 대한 기쁜 소식을 유대인들과 함께 나누어야 함을 명백히 확증한다. 또한 로마서 14-15장이 의미하듯이 우리는 이방인 신자들이 유대인 가운데서 복음을 증거하는 메시아적 유대 신자들을 받아들이고 격려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촉구한다.

하나님과의 화해와 서로간의 화해는 하나님이 요구하는 정의 추구의 근거이자 동기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화해 없이는 평화는 있을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진정이 담긴 지속적인 화해는 과거와 현재의 죄에 대한 인정,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 상처받은 자에 대한 고백, 그리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는 것을 요구한다. 또한 그것은 폭력과 억압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위해 정의를 구현하고 적절한 보상을 구하는 교회의 결단과 헌신을 포함한다.

B) 우리는 하나님과의 화해와 서로간의 화해를 이루는 삶을 살아가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경적 평화를 이루는 과업에 헌신하는 전 세계 그리스도의 교회에 속한 사람들을 만나기를 열망한다.

2. 종족 갈등 속의 그리스도의 평화

종족의 다양성은 창조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선물이자 계획이다.(주62) 종족의 다양성이 인간의 죄와 오만으로 오염되어 혼돈과 분쟁, 폭력과 국가 사이의 전쟁을 낳긴 했지만 이는 모든 나라와 종족과 백성과 언어가 하나님의 구속된 백성들로 하나가 될 때 새로운 창조 가운데 유지될 것이다.(주63) 우리는 종족의 다양성을 진지하게 다루고, 성경이 이야기하듯이 창조와 구속사건 가운데 이것의 가치를 제대로 부여하지 못했다. 우리는 다른 종족의 정체성을 존중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와 같은 경멸적인 상황으로 인해 그들이 받은 깊은 상처들을 무시했다.

A) 우리는 목회자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종족의 다양성에 대한 성경적 진리를 가르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모든 신자들의 종족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확증해야 한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종족에 대한 충성이 우리의 죄로 인해 변질되었으며, 종족의 정체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를 통해 새로운 인류로 구속된 정체성에 결코 앞서지 않음도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종족적 폭력과 억압이라는 극도로 파괴적인 상황과 갈등–인종주의, 흑인노예, 유대인 학살, 인종분리주의, “인종청소” 그리스도인 사이의 폭력, 원주민 학살, 종교 전쟁과 정치적 ‧ 종족적 폭력, 팔레스타인들의 고통, 카스트 제도의 계급적 억압, 종족학살 같은 부끄러운 역사적 유산–이 일어났을 때 대부분의 교회들이 통탄할 정도로 침묵을 지켰던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 자신들의 행동이나 무관심으로 세상의 파괴를 가속화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의 복음을 전파하는 우리의 증거를 심각하게 손상시킨다.

B)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위해 종족적 폭력과 불의와 억압에 참여했던 것을 애통하며 그것에 대해 회개하기를 바란다. 또한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침묵과 무자비하거나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때로는 그러한 입장에 대해 파괴적인 신학적 정당성을 제공하여 악에 동조했던 것에 대해서도 회개하기를 촉구한다.

복음이 세계관의 근본과 불의한 구조에 도전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깊이 뿌리내리지 않는다면, 악이 지배하는 날이 이를 때 그리스도인의 충성은 헌신짝처럼 버려질 것이고, 사람들은 구태의연한 충성이나 행위들로 돌아갈 것이다. 제자화 없는 복음전도나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한 급진적 복종이 없는 부흥은 충분하지 않을 뿐더러 위험하다.

우리는 교회가 세상에서 가장 가시적으로 빛나는 종족간 화해의 모델이 되고 갈등을 해소하는 데 가장 활발한 지지자가 될 날을 고대한다.

복음에 근거한 이러한 열망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결단을 요청한다.

C) 우리는 복음의 화해시키는 온전한 능력을 품으며 그것을 가르친다. 그것은 구속에 대한 온전한 성경적 이해를 포괄하는 것으로서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을 뿐 아니라, 우리가 서로 화해하도록 우리 사이의 갈등을 종식시키신 것을 포함한다.

D) 우리는 화해의 삶의 양식을 채택한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행위를 통해 나타난다.

  1. 타인들을 대신하여 불의에 도전하는 용기를 갖고 박해하는 자들에 대한 용서.
  2. 화해를 위해 장벽을 넘어설 행동을 먼저 취해 갈등의 “상대방”인 이웃들에 대한 도움과 환대.
  3. 폭력에 대해 파괴나 복수로 대응하기보다는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고통과 죽음을 기꺼이 감수함.
  4. 적대적인 사람뿐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한 피난처 역할을 하고, 장기적 안목에서 갈등으로 인한 상처들을 치유함.

E) 희망의 등대와 희망의 담지자 되자.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신 하나님에 대한 증거를 품고자 한다. 그리스도의 이름과 오직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우리는 인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악한 세력들에 대항할 권세를 갖게 되며 그분의 화해케 하는 사랑과 평화를 이루는 능력을 얻는다.

3.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평화

억압받는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의와 샬롬을 추구하고자 하는 우리의 헌신의 성경적 근거는 케이프타운 서약 제1부 7장(c)에 요약되어 있다. 이에 근거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보다 효과적인 그리스도인의 행동을 열망한다.

노예제와 인신매매

윌리엄 윌버포스가 대서양에서 행해졌던 노예무역을 폐지하기 위해 고전분투를 했던 200년 전보다 오늘날 전 세계에는 더 많은 노예들이 있다(2천 7백만 명 정도). 인도에만 1천 5백만 명 정도의 어린이들이 노예상태에 있다. 카스트라는 계급 제도는 천한 계층을 억압하고 달리트(Dalit)를 배척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교회는 오히려 오늘날 그와 방불한 차별들에 오염되어 있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노예제도들 가운데 하나인 카스트제도에 대항하기 위해 전 세계 교회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 주장이 진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교회 안의 모든 불평등과 차별부터 거부해야 한다.

전에는 없던 대규모 인신매매는 모든 대륙의 이주 현상과 성매매를 위한 수단으로 여성과 아동을 노예화시키고 있으며 강제노동이나 징병을 통한 아동학대를 낳고 있다.

A) 인신매매라는 악에 대항하며 “갇힌 자들을 자유케 하기 위해” 예언자와 같이 선포하고 행동하는 전 세계 교회들이 일어나자. 여기에는 인신매매를 촉진하는 사회적 ‧ 경제적 ‧ 정치적 요소들에 대한 문제 제기를 포함해야 한다. 전 세계 노예들은 전 세계 교회에게 “우리 아이들과 여성들을 자유케 해달라. 우리의 대변자가 되어 달라. 예수님이 약속하신 새로운 사회를 우리에게 보여 달라”고 부르짖고 있다.

빈곤

성경이 보여 주듯이 우리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구조적인 경제 정의와 개인적 긍휼, 존중과 관용 같은 온전한 성경의 증거를 품어야 한다. 초대교회와 사도 바울에게 그랬듯이 이러한 포괄적인 성경적 가르침이 우리의 선교전략과 실천에 통합적으로 적용됨을 우리는 환영한다.(주64)

B) 지역교회와 전 세계 교회에 제시된 밀레니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가, 교회가 포착해야 할 중대한 기회임을 인식하자. 우리는 교회들이 정부에 대해 그것들을 옹호하고 미가 챌린지(Micah Challenge)처럼 그것들을 성취하려는 노력에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

C) 세상이 제기할 수 없는 것을 선포하고, 분에 넘치는 부와 탐욕에 맞서지 않고서는 빈곤의 문제를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을 선포할 용기를 갖자. 복음은 소비주의라는 오늘날 만연되어 있는 우상에 도전한다. 우리는 맘몬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로서 우리의 탐욕이 빈곤을 고착시키고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거부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동시에 우리는 복음이 회개로의 부르심을 통해 부자들을 포용하고 용서하는 은혜로 인해 변화된 사람들을 친교의 장으로 초청함을 기쁘게 여긴다.

4. 장애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평화

세계 전역에 걸쳐 6억 이상 존재하는 장애인들은 오늘날 가장 소외된 집단들 중 하나이다.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가장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으며, 가난한 자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단에 속해 있다. 비록 육체적 ‧ 정신적인 것들이 장애인들이 겪는 장애이긴 하지만 그들이 일상적으로 실제로 경험하는 장애의 대부분은 사회적 편견, 불의, 그리고 여러 자원들에 접근하기 어려움들이다. 장애인들을 섬기는 것은 의료적 돌봄이나 사회적 규정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와 교회 안에서 그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평등한 권리를 위해 그들을 돌보는 자와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싸우는 것을 수반한다. 하나님은 상호간의 우정과 존경과 사랑과 공의로 우리를 부르신다.

A) 장애인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교정하는 데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자. 사도 바울이 주장했듯이 “우리는 더 이상 누구도 인간적인 관점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주65)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 모두는 그들을 섬기기 위한 은사들을 갖고 있다. 우리는 장애인들을 섬기는데 헌신할 뿐 아니라 장애인들의 섬김을 받는 데도 헌신한다.

B) 우리는 교회 지도자들과 선교 지도자들이 장애인 선교에 관해 고려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장애를 가진 신자들의 선교적 소명을 인식하고 확증하며 촉진할 것을 촉구한다.

C) 우리는 너무 많은 장애인들이, 장애의 원인이 개인적인 죄, 믿음의 부족 혹은 치유에 대한 열망의 부족 때문이라는 주장을 거부한다. 우리는 보편적 진리인 성경이 이렇게 가르친다는 주장을 거부한다.(주66) 이와 같은 거짓된 가르침은 목회적으로는 무정하고 영적으로는 무가치한 처사이다. 그런 주장은 죄책감을 부추길 뿐 아니라 장애를 극복하려는 의지 짓밟는 행위이다.

D) 우리는 교회가 장애인들을 위한 포용과 평등의 장소로 변하고,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거부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그들의 필요를 변호하며 그들과 함께할 것을 다짐한다.

5. 고통 받고 있는 피조물을 위한 그리스도의 평화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된 성경의 명령은 케이프타운 서약 1부 7장(A)에 명시되어 있다. 인간은 하나님이 선하게 창조한 피조물의 풍성함을 보존하는 청지기이다. 우리는 농업, 어업, 광업, 에너지 산업, 기술, 건축, 무역, 의료 등과 같은 인간의 복지와 필요를 위해 피조물을 사용함으로써 거룩한 통치를 실현하도록 명령받았다. 우리는 이 땅과 그 안의 피조물 모두를 돌봄으로써 그 명령을 수행한다. 이 땅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것의 창조주이시며, 주인이시고 보존하는 분이시고 구속자이시며 상속자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이 청지기직을 수행한다.

우리는 생명의 다양성을 포함해 이 땅의 자원들에 대한 광범위한 남용과 파괴에 대해 애통해 한다. 오늘날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하고 긴박한 도전은 기후 변화의 위협이다. 무엇보다 기후 변화는 가난한 국가의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상 기후의 영향은 빈곤 국가에서 가장 심하게 나타나는데 그들이 그러한 이상 기후에 대응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빈곤과 기후 변화의 문제는 긴박하게 함께 다뤄야 한다.

우리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A) 파괴적이고 공해를 유발하는 소비 습관을 버리는 삶의 방식을 채택한다.

B) 환경 파괴와 잠재적인 기후 변화의 이슈들에 관한 정치적 편의주의에 도덕적 책임을 부과하기 위해 합법적 수단을 행사해 정부를 설득한다.

C) 농업, 산업, 의료 등을 통해 인류의 필요와 복지를 위한 지구의 자원들을 적절하게 사용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i)과 보전과 보호를 통해 주거환경과 종(種)들을 보존하고 회복하는 데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ii)의 선교적 소명을 인식하고 둘 모두를 격려한다. 창조자와 공급자와 구속자를 섬기려는 목표를 그들과 공유한다.

IIC. 타종교인 사이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가기

1.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은 타종교인을 포함한다

케이프타운 서약 1부 7장(D)의 연장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타종교인들에 대한 성경적 관점에 있어 높은 소명에 응답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죄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우리는 그들을 우리의 이웃뿐 아니라, 우리를 그들의 이웃으로 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소박한 사람이 아니라 온화한 사람으로, 아량이 넓은 사람이 아니라 분별하는 사람으로, 두려움에 지배당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직면한 어떤 위협에도 당당히 맞서는 사람으로 부름받았다.

우리는 값싼 개종이 아니라 복음전도를 통해 좋은 소식을 나누기 위해 부름받았다. 사도 바울의 본을 따라 설득력 있고 이성적인 논쟁을 포함하는 우리의 복음전도는 “복음에 관한 청취자들의 사고방식을 형성할 자유를 전적으로 그들에게 일임하며 복음을 정직하고 개방적으로 진술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종교인들에 대한 민감하기 원하며, 그들을 억지로 회심시키려는 어떤 방식도 거부한다.”(주67) 이와 대조적으로 개종은 타종교인들을 ‘우리처럼’ 만들고 ‘우리의 종교를 받아들이게’ 하거나 ‘우리의 교파에 소속하도록’ 강요하려는 시도이다.

A) 우리는 우리의 모든 전도 활동이 윤리적이어야 함을 확고하게 서약한다. 우리의 증거는 ‘깨끗한 양심을 지키는 온유함과 존경’으로 나타나야 한다.(주68) 따라서 우리는 강제적이고 비윤리적이며, 거짓되고 경멸적인 어떤 복음 증거의 형태도 거부한다.

B)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슬림, 힌두교인, 불교인, 그리고 다른 타종교인들과 우정을 나누지 못한 것을 회개한다. 예수님의 영 안에서 우리는 솔선수범하여 타종교인들에 대한 사랑과 선한 뜻과 친절한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C) 우리는 진리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i) 타종교에 관한 거짓과 조롱을 조장하는 행위를 거부하고, (ii) 인종차별적 편견과 대중매체와 정치적 견해를 통해 선동되는 증오와 공포를 고발하고 거부한다.

D) 우리는 평화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폭력을 당했을 때에라도 타종교인들을 대하는 데 폭력적이고 복수 같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거부한다.

E) 우리는 바울이 회당과 공공장소에서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과 논쟁을 벌였던 것처럼, 타종교인들과 대화를 위한 적절한 장소를 모색한다. 기독교 선교의 합법적인 방법인 대화는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복음의 진리에 대한 확신과 함께 존중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주장을 경청하려는 태도와 결합된다.

2. 그리스도의 사랑은 복음을 위해 고난과 죽음을 감수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의 사도들과 구약의 예언자들에게 요구되었듯이 고난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우리의 선교에 반드시 필요하다.(주69) 고난을 기꺼이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선교의 진정성을 명백하게 검증해 줄 수단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교의 진전을 위해 고통과 박해와 순교를 사용하기도 하신다. “순교는 무엇보다 그리스도께서 명예를 위해 약속하신 증거의 한 형태이다.”(주70) 안락함과 번영을 누리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고난 받기 위해 그분의 부르심을 다시금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적대적인 종교문화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값비싼 고난을 당하고 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신실한 순종으로 자신들에게 해를 입히는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이 순교와 고문, 박해를 당하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A) 우리는 복음을 위해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눈물과 기도의 간증을 기억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셨듯이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 그분이 은혜와 용기를 주시길 함께 기도한다. 우리는 복음 증거자들에게 적대적인 곳에서 복음의 열매가 맺히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해 슬퍼하며 하나님이 그분의 사랑과 복음, 그리고 그분의 종들을 거부하고 거절하는 이들에 대해 느끼는 끝없는 아픔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그들이 회개하고 용서받으며 하나님과의 화해를 통해 주어지는 기쁨을 발견하게 되기를 열망한다.

3. 행동하는 사랑은 은혜의 복음을 구체회하며 권고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이다.'(주71) 우리의 소명은 그리스도의 냄새인 하나님의 은혜의 향기를 발하므로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타종교인들이 맛보게 만들므로 타종교인들 속에서 살고 그들을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구현된 사랑을 통해 모든 문화적 ‧ 종교적 상황에서 복음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의 삶과 섬김의 행위를 통해 타종교인들을 사랑할 때, 그들은 하나님의 변화시키는 은혜를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수치와 복수가 종교적 율법주의와 결합되어 “명예”를 중시하는 문화에서 “은혜”는 낯선 개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연약하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은 논쟁거리가 아니라, 매우 이질적이며 반동적인 개념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은혜는, 은혜의 맛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에게 오랜 기간에 걸쳐 체득된 맛이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그를 따르는 자들이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서서히 스며든다.

A) 우리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이 배척당하고 위험에 처한 문화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향기와 맛을 내기 위해, 타종교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어려운 곳에서 살며 사랑하고 섬기며 장기적으로 헌신할 은혜로 충만한 남녀 그리스도인들을 더 많이 세워주시기를 열망한다.

4. 사랑은 제자도의 다양성을 존중한다

소위 “내부자 운동”은 여러 종교들에게서 발견된다. 내부자 운동은 예수님을 그들의 하나님과 구세주로 따르는 집단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의무를 준수하는 것을 포함해 그들이 속한 사회문화적 공동체 안에 살아가면서 예수님과 성경을 중심으로 친교, 가르침, 예배, 기도를 위한 소그룹 모임을 가진다. 이는 복합적인 현상이며, 이 현상에 대해 응답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어떤 이들은 내부자 운동의 혼합주의적 위험성을 경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혼합주의는 문화의 한 형태로 우리의 신앙이 표현되는 것같이,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발견되는 위험이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목격할 때 (1) 성급하게 내부자 운동을 분류하고, 그것을 일련의 새로운 선교전략으로 추진하거나 (2) 민감하게 현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것을 성급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A) 안디옥에 도착해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했던(주72) 바나바의 심정으로 우리는 이 이슈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에게 다음의 사항들을 권고한다.

  1. 우리는 사도적 결정과 실천을 주요 원리 지침으로 취한다.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하지 말고….”(주73)
  2. 우리는 관점의 다양성을 인정하며 겸손과 인내와 호의를 실천하며 상호 비난을 배제한 대화를 전개한다.(주74)

5. 사랑은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전파된다

오늘날 전례 없는 대규모 인구 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주는 이 시대의 중대한 세계적인 실재들 가운데 한 현상이다. 2억 명 정도가 자발적 ‧ 비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출생지 아닌 곳에서 살고 있다. 여기서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는 어떤 이유에서건 자신들의 출생지를 떠난 사람들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을 포함하여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디아스포라의 상태로 살고 있다. 일거리를 찾는 경제적 이주자들, 전쟁이나 자연재해로 인해 내부적으로 격리된 사람들, 난민과 망명자들, 인종청소와 종교적 박해의 피해자들, 가뭄이나 홍수, 전쟁으로 인한 기근 피해자들, 도시로 이주한 빈농 희생자들이 모두 그런 이들이다. 우리는 현대의 이주현상에 수반될 수 있는 악과 고통을 무시하지 말며,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교적 목적 안에 있음을 확증한다.(주75)

A) 우리는 교회 지도자들과 선교 지도자들이 디아스포라들 가운데서 사역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전략적 계획과 그들을 훈련하고 자원을 구비하는 데 집중하면서 세계적인 이주 현상과 디아스포라 공동체에 의해 제기된 선교적 기회들을 인식하고 응답할 것을 권고한다.

B) 우리는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갖고 있는 이주자 공동체들이 산재해 있는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타인들을 사랑하고, 외국인들의 복지를 변호하며, 갇힌 자들을 방문하고, 환대를 실천하며 우정을 나누고, 자신들의 집을 개방해 돕고 섬기라는 포괄적인 성경의 명령에 순종하므로 행위와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반문화적 증거를 담지할 것을 촉구한다.(주76)

C) 우리는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으며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증거를 품고 공동체의 복지를 위한 기회를 얻으려 노력하는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일원인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한다.(주77) 우리는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교회를 포함하고 있는 나라에서 이주민 교회와 토착 교회가 서로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서로 배우며 그 나라를 복음으로 변화시키려는 공동의 노력을 전개할 것을 권고한다.

6. 사랑은 모든 사람의 종교적 자유를 위해 힘쓴다

박해에 직면하여 종교의 자유 수호를 통한 인간의 권리를 변호하는 것은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과 대립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기꺼이 박대를 당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인권침해가 이루어지는 상황 속에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을 옹호하고 목소리를 내는 데 헌신하는 것 사이에는 결코 모순이 없다. 또한 우리는 타종교인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과 그들의 신앙의 진리를 인정하는 것의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타종교를 진리로 수용하지 않고도 타종교인들의 자유를 변호할 수 있다.

A)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종교의 자유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박해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타종교인들을 대표해 정부를 향해 종교의 자유를 주창하는 것을 수반한다.

B)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복지를 추구하고, 권력을 가진 자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세금을 내며 선을 행하고 평화롭고 평온한 삶을 추구하는 선한 백성이 되라는 성경적 가르침에 의지적으로 순종한다. 하나님이 금한 것을 명령하지 않고 하나님이 명령한 것을 금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그리스도인은 국가에 복종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따라서 국가가 우리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과 하나님에 대한 충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한다면, 우리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기에 국가에 대해 ‘아니오’ 라고 말해야 한다.(주78)

모든 사람들의 종교의 자유를 위한 우리의 모든 합법적 노력들 중 가장 깊은 열망은 모든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유롭게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

IID. 세계복음화를 위한 그리스도의 뜻 분별하기

1. 미전도 종족과 선교에서 소외된 종족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사역에 대한 지식에 이르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우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통해 아직도 그러한 지식에 이르지 못한 수많은 미전도 종족들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안타깝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인정한다. 미전도 종족이란 그들 가운데 신자들이나 교회도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시도하는 교회나 선교단체가 없다는 점에서, 미전도 종족들 가운데 많은 종족들이 선교에서 소외된 종족들이다. 실제로 매우 미미한 수준의 교회의 인적 ‧ 물질적 자원들이 이와 같은 소외된 미전도 종족들에게 동원되고 있다. 분명 이들은 복음에 대해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들이기에 우리를 부르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모든 민족들을 제자 삼으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 지 2천 년이 지났음에도 세상에 미전도 종족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의 불순종과 영적인 불의를 보여 주는 대목일 뿐 아니라 ‘마케도니아 사람의 요청’에 침묵했던 것에 대한 책망이다.

전 세계 교회는 이러한 도전에 응답하기 위해 일어나야 한다.

A) 이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전도 종족들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과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긴박성을 갖지 못했던 것을 회개한다.

B)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깊이 참여하고 성육신적 사랑과 희생적 봉사 정신으로 그들 가운데서 복음으로 살아가며, 성령의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대해 그들을 일깨우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진리를 말씀과 행위로 전하려는 우리의 헌신을 새롭게 다짐한다.

C) 성경이 복음전도를 분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성경이 말하는 빈곤의 근절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자신들의 언어로 갖지 못한 종족을 대상으로 한 성경번역 사역을 서두른다.
  2. 성경의 메시지가 구전의 방법으로 널리 사용될 수 있도록 한다(다음의 구술문화 항목을 참고하라.)

D) 성경은 그리스도를 닮은 신자들을 훈련하는 것을 분리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성경에 대한 무지의 근절을 목적으로 한다.

  1. 우리는 우리의 사역과 연합과 성숙에 있어 모든 하나님의 교회의 관심을 끄는 교회성장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분명한 확신을 발견하기를 열망한다.(주79)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목회자와 교사로서 교회에게 주신 모든 신자들의 은사를 기쁘게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가운데 그들을 발굴하여 격려하고 훈련하고 지원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일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사역을 소수의 유급 전문직 사역자나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는 자들로 제한하는 성직주의를 거부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목양하고 가르치는 분명한 은사를 갖고 있는 많은 남녀들이 비공식적이거나 공식적인 교단 구조가 없어도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축복 가운데 자신들의 은사를 발휘한다. 그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다룬다는 인정을 받고 격려를 받으며 구비되어야 한다.
  2. 우리는 현재의 종이, 펜, 연필과 같은 아날로그 식 연구방법에 어떤 문제는 없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디지털 방식의 의사소통에 친숙한 이들이 성경을 귀납법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디지털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쓸 수 있도록 개발한다.

E) 우리는 복음 자체가 성경적으로 타당한 선교의 원천이고 내용이며 권위인 까닭에 우리의 모든 선교사역의 통합적 영역의 핵심에 있는 복음전도를 유지한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그리스도를 통한 그의 구원사역에 대한 구체적 실현과 선포가 되어야 한다.

2. 구술문화

전 세계 인구의 대다수는 읽고 필기 방법을 통해 배울 수 없는 구술 중심의 의사소통 방식을 사용하며, 그 절반 이상은 앞서 정의한 대로 복음을 들어 본 적이 없는 미전도 종족들이다. 그들 가운데 자신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한 구절도 갖고 있지 않은 인구가 3억 5천만 명이나 된다. “일차적 구전 학습자들” 이외에도 많은 “이차적 구전 학습자들”이 있다. 그들은 기술적으로는 읽고 쓸 수 있지만 의사소통 분야의 시각적 학습방식의 급격한 부상과 이미지의 지배로 인해 구술적인 의사소통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구술이라는 이슈를 인식하고 행동을 취할 때, 다음 사항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A)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실행함에 있어 읽고 쓸 수 있는 신자들이라 하더라도 방법론적으로 구술 방식을 더 많이 사용한다.

B) 우선적 대상인 미전도 종족과 선교에서 소외된 종족들의 핵심 언어로 된 구전 형태의 이야기 성경을 적극 활용한다.

C) 선교단체로 하여금 개척 전도자들과 교회 개척자들을 위한 적절한 구술 훈련과 함께 복음전도를 위한 구전 성경 이야기에 대한 기록과 배포, 제자 훈련과 리더십 훈련을 포함하는 구술 전략들을 개발하도록 권고한다. 그들은 스토리텔링, 춤, 예술, 시, 암송, 그리고 연극을 포함하여 구원에 대한 전반적인 성경 이야기를 전하기 위한 효과적인 구술적이고 시각적 의사소통 방식들을 사용할 수 있다.

D) 남반구의 지역교회들이 미전도 종족들의 세계관과 밀접한 구전 방법들을 통해 그 지역에 있는 미전도 종족들과 관계를 맺도록 장려한다.

E) 신학교들이 구전 방법론으로 목회자들과 선교사들을 훈련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제공하도록 장려한다.

3.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지도자들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교회의 급속한 성장이 피상적이고 취약한 이유는 훈련을 받은 지도자들의 부족과 세속적인 권력 ‧ 지위에 대한 탐욕, 부를 취하기 위한 지위 남용 같은 원인들 때문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고통을, 그리스도는 수치를, 복음전도는 방해를 받고 있다. ‘리더십 훈련’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제시되는 해결책이며, 실제로 온갖 종류의 리더십 훈련 프로그램들이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다음의 두 가지 예상되는 이유들로 인해 리더십 훈련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경건하고 그리스도를 닮도록 지도자들을 훈련하는 것은 잘못된 길로 돌아가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성숙한 제자도의 삶을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만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주80) 오늘날 제자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리더십을 개발함에 있어 기본적인 제자훈련을 먼저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세속적인 리더십이 오늘날 교회에 만연해 있는 것은 이 세대가 환원주의적인 복음전도와 제자훈련에 대한 경시, 그리고 피상적인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는 명백한 방증이다. 리더십 실패에 대한 해답은 더 많은 리더십 훈련이 아니라 더 나은 제자훈련이다.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어떤 리더십 훈련은 경건한 성품은 무시하고 잡다한 지식과 화려한 테크닉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진정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종의 심성과 겸손, 온전함과 순결함, 욕심 없는 마음과 기도, 성령에 대한 의존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진 그리스도를 닮은 이들이다. 나아가 어떤 리더십 훈련은, 바울이 자신의 지도자의 자질 목록에 포함시켰던 핵심 기술, 곧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능력에 대한 구체적인 훈련이 결핍되어 있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제자훈련의 가장 주된 수단이지만 현대교회 지도자들에게 가장 심각하게 부족한 요소이다.

A) 우리는 새 신자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장기적인 사역을 통해 고도로 집중적인 제자훈련을 시키므로 하나님께서 부르고 교회에 허락하신 지도자들의 성경적 기준에 부합한 성숙한 종의 모습을 보기를 열망한다.

B) 우리는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에 헌신할 것을 새롭게 다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적으로 신실하고 순종적인 지도자들을 더 많이 배출하고 보호하며 격려해 주시길 열망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을 더럽히며 복음의 능력을 손상시키는 지도자들을 꾸짖으시고 제거하시며 회개로 인도하시길 기도한다. 나아가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보다도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닮으려는 열망을 가진 제자로 훈련된 새로운 세대의 종 된 지도자들을 일으키시기를 기도한다.

C)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우리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몸 가운데 주어진 책임이라는 은사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책임적 집단에 순종할 것을 권고한다.

D) 우리는 신학교와 리더십 훈련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모든 이들이 단지 지식을 전달하거나 성적을 매기기는 것이 아니라, 영성과 인격형성에 집중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다. 또한 우리는 이미 포괄적인 ‘전인적’ 리더십 개발을 실행하고 있는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4. 도시

도시는 인간의 미래와 세계 선교에 매우 중요한 현장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도시에는 크게 네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i) 차세대 청년층 (ii) 이주한 미전도 종족 (iii) 문화 형성층 (vi) 최하위 빈곤층.

A) 우리는 전 세계 교회 지도자들과 선교 지도자들이 급속한 도시화 현상을 목격하며 하나님의 주권적 손길을 깨닫고 도시선교의 긴박성과 전략적 중요성을 인식하므로 이러한 사실에 응답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도시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거룩한 분별력과 그리스도의 긍휼의 마음으로 도시를 사랑하고, “도시의 안녕과 복지를 추구하라는” 그분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도시화 현상의 실재에 응답하는 적실하면서도 유연한 선교 방법들을 습득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5. 어린이

오늘날 모든 어린이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 전 세계에 약 10억 명의 어린이들이 있는데, 그 절반이 빈곤 상태에 있다. 수백만 명의 어린이들은 번영이라는 위험에 처해 있다. 부유하고 안전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어린이들은 물질적으로는 모든 것을 갖고 있으나 삶의 목적을 상실한 채 살고 있다.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은 단지 미래교회의 주역만이 아니라 현재 교회의 주역이다.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선교의 의욕적인 대행자들로서 막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고 그 음성에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태도를 통해 영향을 미치는 알려지지 않은 거대한 인적 자원을 대표한다. 우리는 어린이들을 섬기는 훌륭한 사역을 기뻐하고, 그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됨으로 인해 그 사역이 확장될 것을 열망한다. 성경에서 보듯이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어린이들과 젊은이들–그들의 기도와 통찰력, 그들의 말과 창의성–을 사용하시고 또 사용하실 것이다. 그들은 세상을 변화시킬 “새로운 에너지”를 의미한다. 성인들의 합리적인 접근 방법으로 어린아이 같은 그들의 영성을 억누르지 말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자.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헌신한다.

A) 우리는 어린이들을 위해 그리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목적을 반영하는 참신한 성경적 · 신학적 질문을 재발견하고, “사람들 가운데 한 어린아이를”(주81) 세우신 예수님의 도전적인 행위에서 나타나는 신학과 선교의 심오한 중요성을 재발견하므로 어린이들을 진지하게 대한다.

B) 우리는 어린이들의 가족이나 공동체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각각의 어린이와 젊은 세대를 위한 사역과 그들을 통한 통전적 사역이 세계선교의 중요한 요소라는 확신을 갖고 전 세계 어린이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인력을 훈련하고 자원들을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C) 우리는 폭력, 착취, 노예, 인신매매, 매춘, 성차별과 인종차별, 기업사냥, 고의적인 유기를 포함한 모든 어린이 학대의 실상을 폭로하고 그것에 저항하며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한다.

6. 기도

우리의 모든 우선적 관심사들 가운데 기도에 대한 새로운 헌신을 다짐하자. 기도는 소명이자 명령이며 은사이다. 기도는 모든 선교의 요소들을 위한 본질적 근거이며 원천이다.

A) 성경이 다음과 같이 분명히 명령하는 바와 같이 하나 되어, 집중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기도한다.

  1. 하나님이 그의 성령의 능력 가운데 세계 곳곳에 일꾼들을 보내 주시기를.
  2. 모든 종족들과 지역에서 복음의 진리 선포와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을 증거하며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잃어버린 자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를.
  3.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품과 행위와 말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알려지고 높임을 받으시기를 기도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우리의 형제자매를 위해 외친다.
  4. 우리의 공동체 안에 공의와 창조의 청지기직과 돌봄, 그리고 하나님의 평화의 축복이 넘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B) 우리는 이 세상의 나라가 우리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그 날을 고대하며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보면서 늘 감사한다.

IIE. 그리스도의 교회를 향한 겸손과 온전함과 단순성으로의 부르심

‘걷기’는 우리의 삶의 방식과 일상의 행위에 대한 성경적 은유이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걸어야 하는 것과 걸어가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 일곱 번 언급한다.(주82)

1. 하나님의 구별된 새로운 인류로서 걸어가기(주83)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의 길을 따라 걷거나 다른 신들의 길을 따라 걷는다. 하나님이 이 세상의 열방들과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창조하고 열방들의 축복의 통로로 부르신 백성들과 함께하는 분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문제라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의 선교를 성취하는 데 가장 큰 장애물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우상숭배이다. 열방으로 하여금 오직 살아 계신 참된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하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섬기는 거짓 신들을 따른다면, 우리는 비참하게 실패할 것이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행위 사이에, 곧 부패와 탐욕적 습관, 성적 방종이나 이혼율, 기독교 이전의 종교적 관습으로의 회귀와 다른 인종들에 대한 잘못된 태도, 소비주의적인 삶의 방식이나 사회적 편견과 같은 것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면, 세상은 기독교가 만들어 내는 독특함에 대해 즉각 회의를 할 것이다. 이럴 때 우리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우리를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어떤 진정성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A) 우리는 모든 문화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주변 문화의 우상들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서로에게 도전을 준다. 거짓된 신들과 교회 안의 우상들을 확인하고 폭로하기 위해 예언자적 분별력을 발휘하고 주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로 그들이 회개하고 우상숭배를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내도록 기도한다.

B) 성경적 삶(윤리) 없이 성경적 선교는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조심스럽게 우리 자신의 헌신을 다시 한 번 다짐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모든 이들이 세상의 방식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삶을 살며 “참된 의와 거룩함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새로운 인간이 되도록” 도전한다.

2. 무질서한 성 숭배를 거부하고 사랑 안에서 걸어가기(주84)

결혼은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 사이의 헌신된 신실한 관계로 성립된다는 것이 창조에 담긴 하나님의 설계이다. 결혼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태어난 가족과 구별된 새로운 사회적 개체 안에서 한 몸이 되는데, “한 몸”으로 표현되는 성적 관계는 결혼이라는 서약 안에서만 누릴 수 있다. 결혼을 통해 “둘이 하나가 되는” 식의 사랑 충만한 성적 결합은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 그리고 새로운 인류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되는 것을 반영한다.(주85)

바울은 무질서한 성적 방종으로 가장한 가식적인 사랑과 그에 따르는 모든 추악한 행위를 하나님 사랑의 순결함과 대조시킨다. 성경이 말하는 혼전성관계나 혼외정사를 포함해 모든 무질서한 성적 관계는 창조와 구속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과 축복에서 벗어난 것이다. 무질서함을 포함하는 성적 남용과 성 숭배는 결혼과 가족의 해체를 포함해 사회 전체의 몰락을 초래하며, 믿을 수 없는 고독과 착취로 인한 고통을 낳는다. 이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심각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는 것으로, 리더십의 실패라는 비극적인 일반 원인에 기인한다.

우리는 이 분야에서의 실패를 겸손함으로 깊이 자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이 요청하는 기준에 따라 사는 (윤리적) 삶으로 주위 문화에 도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A) 우리는 목회자들이 다음과 같은 결단을 하길 강력히 촉구한다.

  1. 건강한 관계와 가정생활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담긴 좋은 소식을 적극적으로 선포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목회적 정직함으로 깨지고 역기능적으로 작용하는 주변 문화의 실재들을 다룰 수 있도록 교회 안에서 성에 관해 더 열린 대화를 갖는다.
  2. 하나님의 기준을 분명하게 가르치며 성적 유혹과 죄에 대해 우리 모두가 얼마나 연약한지를 깨닫고 그런 죄를 지은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목회적 긍휼을 베푼다.
  3. 성적인 신실함의 성경적 기준에 따라 사는 긍정적 실례를 제시하도록 노력한다.

B) 교회의 지체로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헌신한다.

  1. 할 수 있는 한 교회와 사회에서 신실한 결혼생활과 건강한 가정생활을 강화한다.
  2.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독신과 미망인, 자녀를 갖지 못한 이들을 돌보는 가족임을 확증하고, 그들이 교회에서 자신들의 은사를 온전히 활용할 수 있도록 그들의 실재와 기여할 수 있는 점을 인정한다.
  3. 포르노, 간음, 난교를 포함하여 주변 문화 속의 여러 형태의 무질서한 성적 방종들을 퇴치한다.
  4. 어떤 이들을 동성애 행위로 이끄는 경험이나 정체성과 같은 매우 핵심적인 이슈들 제대로 이해하고 다루려 노력하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긍휼과 공의로 그들에게 다가가며, 모든 형태의 증오, 언어적이고 물리적인 폭력, 동성애자들을 희생시키는 것들을 거부한다.
  5. 하나님의 구속적 은혜로 인한 변화와 회복의 가능성에서 제외되는 사람이나 상황이란 없음을 기억한다.

3. 권력이라는 우상을 거부하고 겸손함으로 걸어가기(주86)

우리의 타락과 죄로 인해 권력은 종종 다른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데 사용된다. 우리는 성, 인종, 혹은 사회적 지위의 우월함을 주장해 우리 자신을 높이려고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위해 서로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며 교만과 권력을 숭배하려는 모든 표지들에 반대한다. 이러한 상호 복종과 서로를 향한 사랑은 결혼과 가족, 사회경제적 관계를 통해 표현된다.

A) 우리는 예수를 믿는 모든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고용인과 노동자들이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복종할 것”을 가르치는 성경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길 열망한다.

B) 우리는 하나님이 그분의 자녀들에게 요구하는 상호 복종에 관한 가르침을 신자들이 이해하고 정직하게 질문하며 실천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을 격려한다. 탐욕과 권력과 착취가 만연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교회의 지체들 중에 온유한 겸손과 헌신적인 사랑의 처소가 되도록 그분의 교회를 부르고 계신다.

C) 우리는 특별히 남편들이 바울의 가르침에 나오는 남편과 아내에 관한 책임의 균형에 주목하기를 원한다. 상호 복종이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은 교회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모델인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고 돌보는 남편의 사랑을 의미한다. 모든 문화 안에 있는 아내에 대한 어떤 형태의 언어적 ‧ 정서적 ‧ 육체적 학대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결코 양립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문화적 관습이나 왜곡된 성경 해석이 아내를 폭행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것에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잘못된 행동이 목회자들과 지도자들을 포함해 많은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발견되는 것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우리는 그러한 행위는 단호하게 정죄하며, 그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그러한 행위를 중단할 것을 엄중히 요청한다.

4. 성공이라는 우상을 거부하며 온전함 가운데 걸어가기(주87)

우리는 부정직함이라는 기초 위에 진리의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없다. ‘성공’과 ‘성과’에 대한 우리의 갈망은 우리를 거짓으로 점철되어 왜곡되고 과장된 주장을 하게 만들며, 온전함을 포기하라는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빛 가운데 걸어가는 것은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주88)

A) 우리는 모든 교회 지도자들과 선교 지도자들이 우리의 사역을 드러낼 전적인 신실함 이외의 것들의 유혹에 저항할 것을 요청한다. 거짓된 통계로 보고서를 과장하거나 무언가를 얻기 위해 진리를 왜곡할 때 우리는 부정직하게 된다. 우리는 정직함으로 정결케 되고 왜곡과 조작, 그리고 과장을 버리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모든 이들이 적절한 책임감을 위한 필요 이상의 측량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들을 내놓고 현실적이지 않은 요구들을 채우기 위해 영적인 노력을 등한히 하지 않기를 요청한다. 전적으로 온전하고 투명한 문화를 위해 투쟁하자.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고 온전하고 투명하기를 기뻐하시니 우리는 하나님의 빛과 진리 가운데 걸어갈 것이다.(주89)

5. 탐욕이라는 우상을 거부하고 검소함 가운데 걸어가기(주90)

오늘날 전 세계에 만연해 있는 ‘번영복음’은 중요한 문제이다. 번영복음이란, 신자들은 건강과 부의 복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긍정적인 말과 재정적 ‧ 물질적 은사들을 통한 “씨앗 뿌림”으로 건강과 부의 복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번영에 대한 이와 같은 가르침은 전 세계 교파들 전역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다.(주91)

우리는 놀라운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확증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초월적인 능력 가운데 소망의 믿음을 실천하도록 사람들을 이끄는 교회 성장과 사역을 환영한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을 자동적이거나 기계적인 방법으로 이룰 수 있거나, 인간의 말이나 행위, 은사나 목적, 관습 같은 것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우리는 성경이 번영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에 관한 가르침에 물질적인 번영(건강과 부)이 포함된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인 축복이 물질적인 축복에 의해 측정된다거나 언제나 부가 하나님의 축복의 표시라는 주장은 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니라고 거부한다. 성경은 부가 언제나 착취와 속임수, 부패에 의해서도 획득할 수 있음을 가르친다. 또한 우리는 빈곤과 질병, 이른 죽음은 명백하게 하나님의 저주와 부족한 믿음의 증거, 저주의 결과라는 주장도 거부한다. 성경은 그와 같은 획일적이고 단순한 설명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능력과 승리를 찬양하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번영복음을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르침은 성경을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행위와 삶이 윤리적이지 않으며 그리스도를 닮아 있지도 않다. 보통은 그런 이들은 진정한 복음전도를 기적을 추구하는 것으로 대체하고, 회개로의 요청을 설교자가 소속된 단체에 헌금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우리는 많은 교회들에서 이러한 가르침이 영적으로 해를 끼치고 불건전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탄식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든 자들이 치유되고, 가난과 고통에서의 영원한 구원을 바라는 것이 중요한 사역임을 확신한다. 그러나 번영복음은 가난에 대한 영원한 해결책이 아니며, 오히려 영원한 구원에 대한 참된 메시지와 구원의 수단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번영복음은 거짓된 복음이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따라서 우리는 균형 잡힌 성경적 기독교와 양립하지 않는 번영에 대한 지나친 가르침을 거부한다.

A) 우리는 교회 지도자들과 선교 지도자들이 번영복음으로 만연되어 있는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본으로 잘못된 가르침을 분별할 것을 긴급히 촉구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온전한 성경적 문맥과 적확한 균형감으로 번영복음을 지지하는 듯한 성경 본문들을 바르게 해석하고 가르칠 필요가 있다. 빈곤에 처한 상황에 부와 건강에 대한 가르침이 제시될 때, 우리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정의와 지속적인 변혁을 초래하는 참된 긍휼과 행동으로 그러한 가르침에 대항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유익과 탐욕을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도의 표지들인 자기희생과 관대한 베풂의 성경적 가르침으로 대체해야 한다. 우리는 검소한 삶의 방식이라는 로잔운동의 역사적 요청을 다시 한 번 확증한다.

IIF. 선교의 일치를 위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협력하자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일치가 하나님과 우리, 그리고 우리끼리의 화해에 근거한 하나님의 창조물이라 가르친다. 이러한 이중적 화해는 십자가를 통해 성취되었다. 우리가 일치 안에서 살아가고 동반자적 협력을 통해 일할 때, 십자가의 초자연적이고 반문화적 능력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연합하지 못해 일치를 파괴할 때, 우리의 선교 사역과 메시지는 천박해지고 십자가의 능력은 부인되고 만다.

1. 교회의 연합

분열된 교회가 분열된 세상에 줄 수 있는 메시지는 없다. 화해된 일치의 삶에 대한 우리의 실패는 선교의 진정성과 효율성을 방해하는 주요 장애물이다.

A) 우리는 교회와 단체들의 분열과 대립에 대해 깊이 탄식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은혜의 성령을 구하며 “평안의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시는 모든 일에 힘쓰라는” 바울의 권면에 순종하기를 간절히 열망한다.

B) 우리는 가장 깊이 있는 연합은 영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가시적이고 실제적이며 지상적인 연합의 선교적 능력을 더욱 깊이 깨닫길 바란다. 따라서 우리는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의 공동의 증거와 선교를 위해 그리스도의 몸을 분리하려는 모든 유혹을 거부하고 어디에서든 화해와 회복된 일치의 방법을 찾을 것을 촉구한다.

2. 글로벌 선교의 동반자적 협력

선교에 있어서 동반자적 협력은 단순히 효율성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에 관한 것으로 전략적이고 실제적인 일이다. 우리는 대체로 자신의 정체성(인종, 교파, 신학 등)을 우선시하고 보존하려는 선교 사역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오직 한 분이신 주님에게 우리의 사랑과 열정을 드리는 데 실패했다. 선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우선성과 중심성은 단순히 신앙고백 이상으로, 우리의 선교 전략과 실천, 연합을 결정한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부상하고 있는 선교운동의 성장과 동력, 그리고 ‘서구에서 비서구로’라는 기존의 낡은 도식이 종결되었음을 환영한다. 그러나 우리는 선교적 책임의 패턴이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완전히 이동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사악한 영을 제거하기 위해 과거 서구의 승리주의를 거부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 특정 종족이나 국가, 특정 대륙이 지상명령을 성취할 것이라는 배타적 특권을 주장할 수는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주권자이시기 때문이다.

A) 우리는 세계선교에 함께 공헌할 동일한 기회를 갖고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교회 지도자와 선교 지도자들로서 함께 협력한다.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사람들이 같은 대륙이나 같은 신학 집단이나 조직, 혹은 우리와 친밀한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아닐 때에라도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 가운데 의심과 경쟁심과 자만심을 버리고 그들에게 배우자.

B) 동반자적 협력은 재정 이상의 것으로, 재정에 대한 무분별한 투자는 교회를 부패하게 만들고 분열시킨다. 교회란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이 결정권을 갖는다는 원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곳임을 분명히 하자. 자신이 선호하는 교회, 슬로건, 프로그램, 시스템, 방법을 강요하지 말자. 대신 북과 남 그리고 동과서의 참된 상호관계와 서로 주고받는 상호의존, 그리고 선교에서의 진정한 우정과 참된 동반자를 특징으로 하는 존중과 존엄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자.

3. 남녀의 동반자적 협력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고, 그들에게 땅을 다스릴 권세를 주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에게 반역을 도모한 남녀를 통해 죄가 인류의 삶과 역사 속으로 들어왔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남자와 여자에게 똑같이 구원과 용납과 연합을 주셨다. 오순절에 하나님은 모든 육체와 아들과 딸들에게 똑같이 예언의 영을 부어주셨다. 따라서 여자와 남자는 창조와 죄, 구원과 영적으로 동등하다.(주92)

남자와 여자, 기혼자와 미혼자 모두 하나님의 은혜의 청지기로서 다른 이들의 유익과 그리스도를 찬송하고 그분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은사들을 사용할 책임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부르신 교회를 섬기기 위해 주신 은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주93)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사역을 멸시함으로 성령을 소멸하지 말아야 한다.(주94) 나아가 우리는 자신의 지위와 권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한 부르심의 소명 가운데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은사를 책임 있게 사용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A) 우리는 다음에 나오는 바와 같이 로잔의 역사적 위치를 확증한다. “우리는 성령의 은사들이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에게 주어지며 복음화를 위한 그들의 동반자적 협력은 공동의 선을 위해 기쁘게 수납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증한다.”(주95) 우리는 성경 시대부터 현재까지 남자와 여자에 대한 사역을 통해 세계선교에 기여한 여성들의 놀라운 희생적 공헌을 기꺼이 인정한다.

B) 우리는 성경에 신실하게 순종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 상이한 견해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여성은 가르치거나 설교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해석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여성의 영적 동등성과 초대교회에서의 교화적인 성격을 가진 여성의 예언의 은사, 여성의 가정으로 신자들을 초대하는 것을 여성의 리더십이 발휘된 것으로 이해해 이와 같은 영적 은사들이 남성과 여성 모두의 사역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주96) 우리는 이러한 논의들과 관련해 다음의 접근과 태도를 요청한다.

  1.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분열과 파괴적인 언사, 혹은 서로에 대한 불경건한 적대감의 근거들을 없애기 위해 논쟁점들과 관련해 정죄함 없이 서로를 수용한다.(주97)
  2. 원 저자들과 현대의 독자들의 문화와 상황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함께 성경을 연구한다.
  3. 고통이 있는 곳에서는 긍휼을 보여 주고, 불의와 온전함이 결핍된 곳에서는 그것에 굳세게 맞서며, 어떤 형제나 자매 안에 나타난 성령의 분명한 역사를 거부하는 곳에서는 회개가 있어 함을 인정한다.
  4. 이 세상의 권력과 지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섬기는 자세를 반영하는 남녀의 사역에 헌신한다.

C) 우리는, 바울이 교회에 권고했듯이 선한 것을 가르치고 모범을 보인 경건한 여성들을 인정하고, 여성들이 교육, 봉사, 리더십, 특히 복음이 불의한 문화적 전통에 도전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을 위한 기회의 문을 전적으로 개방할 것을 촉구한다.(주98) 우리는 여성들이 하나님의 은사를 활용하거나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것을 방해하지 말 것을 열망한다.

4. 신학교육과 선교

신약성경은 (사도 바울이 했던 것 같은) 복음전도와 교회 개척, 그리고 (디모데와 아볼로가 했던 것 같은) 교회 돌봄 사이에 긴밀한 동반자적 협력 관계가 있음을 보여 준다. 이 두 과제들은 예수님이 (‘세례를 베풀기’ 전에) 복음전도 측면에서 제자를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한 지상명령으로 통합된다. 신학교육은 복음전도를 넘어서는 선교의 일부이다.(주99)

지상에서의 교회의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를 섬기고, 신학교육의 선교는 교회의 선교를 강화하며 교회의 선교를 수반하기 위한 것이다. 신학교육의 목적은 첫째, 목사-교사들이 신실함과 적실성과 명확성을 갖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도록 구비하며, 그들이 목사와 교사로서 교회를 이끌어 가도록 훈련하는 데 있다. 둘째, 모든 문화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고 적실성 있게 소통하는 선교적 과제를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을 구비하는 데 있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는” 것처럼(주100) 신학교육은 영적 전쟁에 적극 관여한다.

A) 교회와 선교단체들을 이끄는 우리는 신학교육이 본질적으로 선교적 임을 인정해야 한다. 학문 기관에서 신학교육은 그것 자체가 아니라 이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선교를 섬기기 위해 신학교육을 제공한다는 선교적 목적을 의식적으로 확신한다.

B) 신학교육은 모든 형태의 선교 사역과 동반자적 협력 관계를 갖는다. 우리는 공식적 ‧ 비공식적인 차원, 그리고 현지적 ‧ 국내적 ‧ 지역적 ‧ 국제적 차원에서 성경에 충실한 신학교육을 제공하는 모든 사람들을 격려하고 후원한다.

C) 우리는, 교육기관과 프로그램들이 진정으로 자신들의 문화에서 교회가 직면해 있는 필요와 기회를 채워주고 있다는 확신을 통해 그것들의 커리큘럼과 조직, 그리고 정신에 대한 ‘선교적 검증’을 촉구한다.

D) 우리는 모든 교회 개척자들과 신학교육자들은 성경을 단지 교리적 진술로가 아닌 실제로 동반자적 협력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음전도자들은 자신들의 메시지의 내용과 권위의 최상의 원천으로 성경을 사용해야 한다. 신학교육자들은 기독교 신학에 있어서 모든 학문과 실천 분야에 통합적이고 영향력 있는 핵심적인 훈련으로서 성경연구를 핵심요소로 재차 강조해야 한다. 무엇보다 신학교육은 성경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책임으로 한 목사-교사들을 구비하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주101)

결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세상과 화해하셨다. 하나님의 영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화목케 하시는 사랑의 대사가 되도록 그리스도의 교회를 케이프타운으로 부르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가운데 계시고 우리와 함께 걸으셨기에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그분의 백성들과 함께 만나셨던 것처럼 그분의 말씀의 약속을 지키셨다.(주102)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자 힘썼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그분의 자비와 성령을 통해 자신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그분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다. 성경강해와 본회의 발표, 그리고 그룹토의를 통해 나온 수많은 의견들에 다음의 두 가지 주제가 반복되어 나타났다.

  • 수적인 성장뿐 아니라 질적인 성장을 위하여 지속적인 성숙을 이루는 급진적인 순종의 제자도의 필요성.
  • 믿음과 소망 안에서의 성장뿐 아니라 사랑 안에서의 성장을 위하여 일치를 지향하는 급진적인 십자가 중심의 화해의 필요성.

제자도와 화해는 우리의 선교에 있어 불가분의 요소이다. 우리는 천박함과 제자도의 결핍, 분열과 사랑의 결핍이라는 수치를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 두 가지 결핍은 우리의 복음증거를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문제들로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분별한다. 복음서에 기록되었듯이 그리스도께서 가장 안타까운 심정으로 교회에게 주셨던 말씀 중 두 개의 말씀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근원적인 명령을 주셨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할 때 세상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라는 근원적인 방법을 교훈하셨다. 예수님은, 이천 년이 지난 후 전 세계에서 모인 그분의 백성들에게 동일한 말씀을 주신다. 이에 우리는 놀라지 말고 주인의 음성 듣기를 기뻐해야 한다. 제자를 삼고, 서로 사랑하라.

제자화

성경적 선교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겸손, 사랑, 온전함, 관대함, 그리고 종의 길을 걸으며 그를 따름으로 그를 닮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자도와 제자 삼는 데 실패하는 것은 우리의 선교의 가장 기초적인 차원에서 실패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분의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우리를 복음서의 메시지에 새롭게 다가서게 만든다. ‘와서 나를 따르라’ 그리고 ‘가서 제자 삼으라.’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은 세 번에 걸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반복해 말씀하셨다.(주103) 예수님은 세 번에 걸쳐 “아버지여,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라고 기도하셨다.(주104) 이 명령과 기도는 선교적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이보다 더 간절한 예수님의 말씀은 없었다. 세계복음화와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의 인정은 우리가 그분에게 순종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의 부르심은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과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새로운 명령으로 우리에게 온다.(주105)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우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에 대한 순종에 새롭게 헌신하도록 한다.(주106)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화해를 이룬 사랑의 하나됨 가운데 살 때, 세상은 예수님을 알고 우리가 그분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되며,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를 알게 될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구원의 은혜라는 유일한 믿음의 기초 위에서 우리는 성경적 제자도라는 개혁과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랑의 혁명을 진정으로 열망하며 기도한다.

이러한 기도를 드리며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을 위하여, 그리고 그분의 이름으로 우리가 섬기는 세상을 위하여 우리의 헌신을 다짐한다.

[1] 갈 5:6; 요 14:21; 요일 4:9, 19

[2] 마 22:37-40; 롬 13:8-10; 갈 5:22; 벧전 1:22; 요일 3:14; 4:7-21; 요 13:34-35; 요 1:18 & 요일 4:12; 데전 1:3; 고전 13:8, 13

[3] 신 7:7-9; 호 2:19-20; 11:1; 시 103; 145:9, 13, 17; 갈 2:20; 신 10:12-19

[4] 신 6:4-5; 마 22:37; 레 19: 18, 34; 마 5:43-45; 요 15:12; 엡 4:32; 요 3:16-17

[5] 롬 5:5; 고후 5:14; 계 2:4

[6] 신 4:35, 39; 시 33:6-9; 렘 10:10-12; 신 10:14; 사 40:22-24; 시 33:10-11, 13-15; 시 96:10-13; 시 36:6; 사 45:22

[7] 신 4 and 6

[8] John Stott, The Message of Romans, The Bible Speaks Today (Leicester and Downers Grove: IVP, 1994) p. 53.

[9] 시 138:2

[10] 요 14:6; 롬 8:14-15; 마 6:9; 요 14:21-23

[11] 신 32:6, 18; 1:31; 8:5; 사 1:2; 말 1:6; 렘 3:4, 19; 31:9; 호 11:2; 사l 103:13; 사 63:16; 64:8-9

[12] 요 3:16; 요일 3:1; 롬 8:32; 히 9:14; 갈 2:20; 갈 1:4-5

[13] 마 5:9, 16, 43-48; 6:4, 6, 14-15, 18, 25-32; 7:21-23

[14] 요 1:3; 고전 8:4-6; 히 1:2; 골 1:15-17; 시 110:1; 막 14:61-64; 엡 1:20-23; 계 1:5; 3:14; 5:9-10; 롬 2:16; 데후 1:5-10; 고후 5:10; 롬 14:9-12; 마 1:21; 눅 2:30; 행4:12; 15:11; 롬 10:9; 딛 2:13; 히 2:10; 5:9; 7:25; 계 7:10

[15] 눅 6:46; 요일 2:3-6; 마 7:21-23

[16] 마 16:16; 요 20:28; 벧전 1:8; 요일 3:1-3; 행 4:12

[17] 창 1:1-2; 시 104:27-30; 욥 33:4; 출 35:30-36:1; 삿 3:10; 6:34; 13:25; 민 11:16-17, 29; 사 63:11-14; 벧후 1:20-21; 미 3:8; 느 9:20, 30; 슥 7:7-12; 사 11:1-5; 42:1-7; 61:1-3; 32:15-18; 겔 36:25-27; 37:1-14; 욜 2:28-32

[18] 행 2; 갈 5:22-23; 벧전 1:2; 엡 4:3-6; 11-12; 롬 12:3-8; 고전 12:4-11; 고전 14:1; 요 20:21-22; 14:16-17, 25-26; 16:12-15; 롬 8:26-27; 엡 6:10-18; 요 4:23-24; 고전 12:3; 14:13-17; 마 10:17-20; 눅 21:15

[19] 시 119:47, 97; 딤후 3:16-17; 벧후 1:21

[20] 신 30:14; 마 7:21-27; 눅 6:46; 약 1:22-24

[21] 마닐라 선언문 Section 7; 딛 2:9-10

[22] 시 145:9, 13, 17; 시 104:27-30; 시 50:6; 막 16:15; 골 1:23; 마 28:17-20; 합 2:14

[23] 시 24:1; 신 10:14

[24] 골 1:15-20; 히 1:2-3

[25] 행 17:26; 신 32:8; 창 10:31-32; 12:3; 계 7:9-10; 계 21:24-27

[26] 행 10:35; 14:17; 17:27

[27] 시 145:9, 13, 17; 147:7-9; 신 10:17-18

[28] 창 18:19; 출 23:6-9; 신 16:18-20; 욥 29:7-17; 시 72:4, 12-14; 82; 잠 31:4-9; 렘 22:1-3; 단 4:27

[29] 출 22:21-27; 레 19:33-34; 신 10:18-19; 15:7-11; 사 1:16-17; 58:6-9; 암 5:11-15, 21-24; 시 112; 욥 31:13-23; 잠 14:31; 19:17; 29:7; 마 25:31-46; 눅 14:12-14; 갈 2:10; 고후 8–9; 롬 15:25-27; 딤전 6:17-19; 약 1:27; 2:14-17; 요일 3:16-18

[30] 로잔언약, Paragraph 5

[31] 레 19:34; 마 5:43-4

[32] 마 5:38-39; 눅 6:27-29; 23:34; 롬 12:17-21; 벧전 3:18-23; 4:12-16

[33] 롬 13:4

[34] 요일 2:15-17

[35] 창 3; 데후 1:9

[36] 막 1:1, 14-15; 롬 1:1-4; 롬 4; 고전 15:3-5; 벧전 2:24; 골 2:15; 히 2:14-15; 엡 2:14-18; 골 1:20; 고후 5:19

[37] 롬 4; 빌 3:1-11; 롬 5:1-2; 8:1-4; 엡 1:7; 골 1:13-14; 벧전 1:3; 갈 3:26–4:7; 엡 2:19-22; 요 20:30-31; 요일 5:12-13; 롬 8:31-39

[38] 롬 1:16

[39] 갈 5:6

[40] 엡 2:10

[41] 약 2:17

[42] 딛 2:11-14

[43] 롬 15:18-19; 16:19; 고후 9:13

[44] 롬 1:5; 16:26

[45] 계 15:6; 갈 6:6-9; 히 11:8; 창 22:15-18; 약 2:20-24

[46] 롬 8:4

[47] 요 14:21

[48] 요일 2:3

[49] 데전 2:13-14; 요일 4:11; 엡 5:2; 데전 1:3; 4:9-10; 요 13:35

[50] 요 13:34-35; 17:21

[51] 히 13:1-3; 고전 12:26; 계 1:9

[52] 계 3:17-20

[53] 엡 1:9-10; 골 1:20; 창 1–12; 계 21–22

[54] 로잔언약, Paragraphs 4 and 5

[55] 통전적 선교에 관한 미가선언문(The Micah Declaration on Integral Mission)

[56] 데전 1:3

[57] 엡 2:10

[58] 골 3:23

[59] 1981년, 유엔총회 전 의장이었던 찰스 말릭(Charles H. Malik)은 “대학의 비평”이라는 제목의 파스칼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대학은 세상을 움직이는 명확한 지점이다. 교회가 할 수 있는 것들 중, 대학생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것 보다 더 큰 섬김과 복음적인 운동은 없다. 무엇보다 효율적인 수단으로 대학을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세상은 변화될 것이다.”

[60] 엡 1:10; 2:1-16; 3:6; 갈 3:6-8. (6장 ‘선교의 일치를 위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동반자적 협력하기’를 참조하라.)

[61] 엡 2:11-22; 롬 3:23; 롬 10:12-13; 엡 2:18

[62] 신 32:8; 행 17:26

[63] 계 7:9; 21:3, 계 21:3 본문에는 “그들은 그의 백성’들’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64] 행 4:32-37; 갈 2:9-10; 롬 15:23-29; 고후 8–9

[65] 고후 5:16

[66] 요 9:1-3

[67] 마닐라 선언문, 12

[68] 벧전 3:15-16. 행 19:37과 비교하라.

[69] 고후 12:9-10; 4:7-10

[70] 마닐라 선언문, Section 12

[71] 고후 2:15

[72] 행 11:20-24

[73] 행 15:19

[74] 롬 14:1-3

[75] 창 50:20

[76] 레 19:33-34; 신 24:17; 룻 2; 욥 29:16; 마 25:35-36; 눅 10:25-37; 14:12-14; 롬 12:13; 히 13:2-3; 벧전 4:9

[77] 렘 29:7

[78] 렘 29:7; 벧전 2:13-17; 딤전 2:1-2; 롬 13:1-7; 출 1:15-21; 단 6; 행 3:19-20; 5:29

[79] 엡 4:11-12

[80] 딤전 3:1-13; 딛 1:6-9; 벧전 5:1-3

[81] 막 9:33-37

[82] 다양하게 번역되지만 다음의 본문들은 모두 “걸어간다”라는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엡 2:2; 2:10; 4:1; 4:17; 5:2; 5:8; 5:15

[83] 엡 4:16-31

[84] 엡 5:1-7

[85] 엡 5:31; 2:15

[86] 엡 5:15–6:4

[87] 엡 5:8-9

[88] 엡 5:10

[89] 대상 29:17

[90] 엡 5:5

[91] 로잔 신학위원회가 소집한 아프리카 신학자들이 내놓은 ‘아크로퐁 선언: 번영신학 비판’의 전문(The Akropong Statement: A critique of the Prosperity Gospel)을 참조하라. www.lausanne.org/akropong

[92] 창 1:26-28; 창 3; 행 2:17-18; 갈 3:28; 벧전 3:7

[93] 롬 12:4-8; 고전 12:4-11; 엡 4:7-16; 벧전 4:10-11

[94] 데전 5:19-20; 딤전 4:11-14

[95] 마닐라 선언문, Affirmation 14

[96] 딤전 2:12; 고전 14:33-35; 딛 2:3-5; 행 18:26; 21:9; 롬 16:1-5, 7; 빌 4:2-3; 골 4:15; 고전 11:5; 14:3-5

[97] 롬 14:1-13

[98] 딛 2:3-5

[99] 골 1:28-29; 행 19:8-10; 20:20, 27; 고전 3:5-9

[100] 고후 10:4-5

[101] 딤후 2:2; 4:1-2; 딤전 3:2b; 4:11-14; 딛 1:9; 2:1

[102] 레 26:11-12; 마 18:20; 28:20

[103] 요 13:34; 15:12; 17

[104] 요 17:21-23

[105] 엡 4:1-6; 골 3:12-14; 데전 4:9-10; 벧전 1:22; 요일 3:11-14; 4:7-21

[106] 요일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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